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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 "이봐, 당신 나이가 몇이야? 아직 젊구먼. 젊은 나이에 그래도 자기 가게도 있고, 괜찮네, 아주 괜찮아. 아, 미안합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말을 막하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좀 취한 거 같네요. 고마워요. 통 내가 요즘은 사는 게 엉망이라 말이지... 물어봐 줘서 고맙네. 사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뭐 내가 여기서 그런 얘기까지 할 만큼 막돼먹은 꼰대는 아니라서 말이지. 쉽게 말하자면 망한 거야, 망한 거. 그냥 깔끔하게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다 이거지. 내가 이래 봬도 돈 좀 만졌던 사람이거든. 나한테 어떻게든 잘 보이려던 사람들이 한 트럭은 되던 시절도 있었어. 그때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이게 아주 재밌는 게 결국 뭐라도 되는 거는 돈이야. 내가 돈을 굴리는 게.. 2022. 1. 24.
도시 산책 유난히 계단이 가파르고 좁은 날이었다. 계단을 모두 내려오니, 음식물 쓰레기의 악취가 덮쳐왔다. 무엇인가가 부패하는 냄새는 언제나 내게 역한 반응을 끌어낸다. 더러운 것들이 발하는 냄새와는 다른, 죽어가는 것들만이 뿜어내는 그런 냄새가 있다. 황급히 거리로 나선다. 회색빛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지는 않지만, 해를 볼 수는 없는 하늘이다. 공기에는 습기의 냄새가 나고, 구름의 그늘이 드리워진 거리는 무엇으로 축축해져 있는지 얼룩덜룩했다. 모퉁이를 돌아서 더 큰길로 나아간다. "죽어. 이제 그만 됐어. 죽어줘. 뛰라고 어서. 내 말 알아들어? 어서 뛰어. 할 수 있다면서. 나를 위해서 뛰어준다면서. 왜 다리를 부들부들 떨어? 이제 와서 무서워 진거야? 못 뛰겠어? 그럼, .. 2022. 1. 24.
눈 오는 밤 눈이 오면 다음 날 길거리부터 걱정하는 것은 '꼭 그렇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습니다. 이제 어른이라고, 난 더 이상 눈 오는 날을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은 거죠. 누군가 말했을 거예요. 난 이제 눈 오는 게 싫다고, 눈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냐고, 다음날 질척 질척한 바닥을 생각해 보라고 말이죠. 그리고 아마도 그 말을 듣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고, 어른스럽고, 낭만적 환상에서 졸업한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겪을 불편함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히 아니니까요. 하지만 눈 내리는 풍경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측면을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어린 시절만큼 눈이 환상적이지는 않은 .. 2022. 1. 24.
고양이 고양이는 쉬이 도망간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여 항상 그들과 눈인사를 시도하고 접촉을 시도하지만, 그것은 항상 실패로 끝난다. 그 도도한 눈망울로 사람을 쳐다보다가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가도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다. 내가 먹이라도 들고 있다면 종종 망설이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내게 쉽게 다가오는 법은 없다. 한 번은 고양이 한 마리를 길들인 적이 있다. 그 어린 고양이는 처음에는 날 경계하였지만, 하루, 이틀 계속 먹이를 주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날 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가가면 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해치고 나오기도 했다. 하나 언젠가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돌보아 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좋은 주인을 만났으려니 생각한다. 난 종종 그 녀석을 생각하곤 한다. 사람을 대함.. 2022.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