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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3

알콜예찬 첫 잔을 들이켠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약함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약자들의 혁명이었다.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솔직해졌음은 사실이다. 때문에 이제 우리는 나와 같은 약한 자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어졌다. 이것이 우리가 모두 혼자이면서 연결된 이유다. 이제 우리는 인생의 동반자 따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문명은 동거인 없이 생활이 가능한 기술을 발전시켰고, 기어코는 약자들을 이어주었다. 이제 나의 치부를 인터넷에 마음껏 끄적이고 날것의 반응들을 함께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번듯한 나를 연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른 번듯한 사람일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 요플레 뚜껑을 핥는 나는, 남의 인스타그램을 훔쳐보는 나는, 홀로 외로움과 자유를.. 2022. 2. 12.
눈 오는 밤 눈이 오면 다음 날 길거리부터 걱정하는 것은 '꼭 그렇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습니다. 이제 어른이라고, 난 더 이상 눈 오는 날을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은 거죠. 누군가 말했을 거예요. 난 이제 눈 오는 게 싫다고, 눈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냐고, 다음날 질척 질척한 바닥을 생각해 보라고 말이죠. 그리고 아마도 그 말을 듣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고, 어른스럽고, 낭만적 환상에서 졸업한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겪을 불편함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히 아니니까요. 하지만 눈 내리는 풍경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측면을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어린 시절만큼 눈이 환상적이지는 않은 .. 2022. 1. 24.
고양이 고양이는 쉬이 도망간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여 항상 그들과 눈인사를 시도하고 접촉을 시도하지만, 그것은 항상 실패로 끝난다. 그 도도한 눈망울로 사람을 쳐다보다가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가도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다. 내가 먹이라도 들고 있다면 종종 망설이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내게 쉽게 다가오는 법은 없다. 한 번은 고양이 한 마리를 길들인 적이 있다. 그 어린 고양이는 처음에는 날 경계하였지만, 하루, 이틀 계속 먹이를 주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날 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다가가면 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해치고 나오기도 했다. 하나 언젠가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돌보아 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좋은 주인을 만났으려니 생각한다. 난 종종 그 녀석을 생각하곤 한다. 사람을 대함.. 2022.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