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99 차(茶) "이 쓴 걸 왜 마셔?"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 아니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미소 지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차(茶)를 매우 좋아하셨다. 젊은 시절에 술을 매우 좋아하셨다던 아버지는 어느 날 술을 끊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차에 대하여 조예가 깊으셨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의 취미를 아는 사람들이 때때로 고가의 차를 보내주셨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는 싸구려 티백을 드셨다. 녹차, 옥수수수염차, 보이차, 집에는 언제나 많은 티백 상자가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책을 들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아버지께서는 항상 그렇게 웃으면서 책을 읽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 곁에서 알짱거렸다. 무슨.. 2022. 1. 24. 냉면 "제 콤플렉스는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요? A 도 있었고, B 도 있었잖아요. 그 사람들의 비극에 대하여 들었잖아요. 그건 정말 너무 엄청난 비극이었죠.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질투가 났어요. 저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엄청나게 행복하고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지금보다 더 나은 옛날 같은 건 기억이 안 나거든요.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또 그런 자리에서 얘기할 게 없어요. 저는 이야기가 없어요. 그런데 말이죠. 최근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J 와 밥을 먹었거든요. 아 J는 제 여자 친구였던 사람이에요. 밥을 먹고 있는데, J 가 말하더라고요. 우리 헤어지자고 말이.. 2022. 1. 24. 상처 A 씨는 짐에서 깼다. 그의 옆자리가 허전했다. 함께 잠들었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잠자리는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A 씨는 잠시 자신의 기억을 의심했다. 틀림없이 어제 잠자리는 그녀와 함께였다. 술도 한 방울 마시지 않았는데 기억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었다. '어딜 간 거지...' 햇살이 비쳐 드는 창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는 일어나서 시계를 보았다. 그의 탁상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일치고는 이른 시간이었다. '벌써 일어날 시간은 아닌데...' 이번엔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탁상시계 위의 편지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노란색 편지 봉투.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좋지 않다.' 그는 편지의 내용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넘겨집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여 확인에.. 2022. 1. 24. 꿈과 살인 둔탁한 촉감. 그렇게 금속 배트를 타고 진동이 전해져 왔다. 금속을 두들길 때의 그 강한 충격은 아니지만, 석고상처럼 무르지는 않았다. 그것은 뭔가를 으깨는 느낌. 단단하지만 너무 단단하지는 않은 어떤 것을 으깨는 느낌이었다. 이 꿈은 처음이 아니었다. 언제나 시작은 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부터다. 그리고 앞으로 고꾸라진 사람을 수차례 내리친다. 머리가 짓이겨지고, 더 이상은 사람의 머리 모습이라 보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평소에 꾸던 자각몽과 동일했다. 그는 현실의 스트레스가 이런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칫 위험한 망상이지만, 꿈인데 무엇이 어떠랴. 오히려 이런 꿈이 현실의 자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리라. 심지어 그는 자신의 파괴본능에 휩싸여 현실이라 생각하고 이 배트를 휘두르는 것도 .. 2022. 1. 24. 이전 1 2 3 4 5 6 7 8 ··· 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