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쓴 걸 왜 마셔?"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 아니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미소 지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차(茶)를 매우 좋아하셨다. 젊은 시절에 술을 매우 좋아하셨다던 아버지는 어느 날 술을 끊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차에 대하여 조예가 깊으셨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아버지의 취미를 아는 사람들이 때때로 고가의 차를 보내주셨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는 싸구려 티백을 드셨다. 녹차, 옥수수수염차, 보이차, 집에는 언제나 많은 티백 상자가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책을 들고 차를 마시는 모습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아버지께서는 항상 그렇게 웃으면서 책을 읽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 곁에서 알짱거렸다. 무슨 책을 읽으시는지, 또 무슨 차를 드시는지.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나를 귀찮아하셨던 적이 없다. 차를 한 모금 주시고, 때로는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맑은 날 오후였다. 병마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아버지께서는 음식물 섭취를 엄격하게 관리하셔야 했고, 더 이상 차를 드실 수 없었다. 나는 의사의 그 처방 앞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섭섭해하는 표정을 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그 많은 책을 어째서 읽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에서 누가 어떤 얘기를 해도 허허 웃으면서 넘어가던 사람이었다.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와중에도 아버지께서는 그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계셨다. 어머니의 외도에도 아버지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두 분의 이혼 앞에서 나는 피해자인 아버지를 더 원망했다. 어머니께서 집을 떠나시는 그날도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차를 마셨다.
언젠가부터 동생도 나도 더 이상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살고 있었고, 필요한 말들을 해야 했지만 그것은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께서 읽는 책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마시는 차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요양 병원에 도착한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제 와서 어머니께 연락드릴 생각은 없었다. 조부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신지 오래였고, 나는 아버지의 친인척들의 연락처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휴대폰을 흩어 보았지만, 그곳에는 단 하나의 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장례 진행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어찌 진행해야 할지도 감이 서지 않았다. 나는 상주였지만, 장례식은 상주와 고인 둘만의 행사는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한 번도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신 적이 없었다. 요양 병원에 들어가신 것도 아버지셨고, 성실한 직장 생활로 모은 돈으로 병원비를 지불하신 것도 아버지셨다. 아버지께서는 문자로 때때로 진행 상황을 알려주셨다. 어디에 있는 어떤 요양 병원에 있노라고 말이다. 그저 사실을 알리는 담담한 문자는 그것이 없는 것보다도 우리가 더 먼 곳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뿐이었다.
간호사분이 내게 넘겨주신 것은 아버지의 유서였다. 유서는 두 문장으로 시작했다.
'장례는 치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가능하다면 화장을 하고 뼛가루는 어딘가 바다에 뿌려주었으면 한다.'
살아생전에도 단 한 번도 내게 뭔가를 요구하신 적이 없는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어떤 생각으로 이 문장을 적었을까.
'차는 따뜻하면 따뜻하여 맛있고, 차가운 것은 차가운 대로 맛이 있는 법이다. 기쁠 때 마시는 차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오래 가게 만들어주고, 슬플 때 마시는 차는 그 씁쓸함으로 마음을 위로하는 법이다. 놀랐을 때는 그 청명함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가 났을 때는 눈과 머리를 맑게 만들어 마음을 다스리게 해 준다.
나는 차를 마시는 삶을 살았고, 세상에 이런 삶이 하나 추가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단다. 너를 처음으로 만났던 날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너를 생각함으로 행복하단다. 다만 이제 나는 차를 마실 수 없구나. 사랑한다 아들아.'
간호사는 내게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무척 아프셨을 텐데 언제나 미소를 짓고 계셨다고 말이다. 말을 하실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의 미소는 당신들께 힘이 되었다고 말이다. 요양 병원의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기억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아마도 아무도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나으셨을까. 아버지의 삶에도 사랑이, 기쁨이 슬픔이 있었을까. 사람은 무엇을 사는 것일까. 나는 아버지의 무엇을 봐왔던 걸까. 아버지는 나의 무엇을 봐왔던 것일까. 아버지의 짧은 유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무엇을 사랑하신 것일까. 나는 1층 편의점에서 녹차를 한 페트 구입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이런 부자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