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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가족 병상에 있는 친구를 만난 것이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6인실의 오른쪽 세 개의 병상 중 가장 창가 쪽이었습니다. 커튼은 쳐두지 않았더군요. 블라인드가 올라가 있는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지도, 티브이를 보지도 않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자고 있던 것도 아니었죠.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정면에 있는 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선에 초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멍 때리는 것과는 다른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침대로 다가갔습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친구는 저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묘한 표정으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저를 반기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표정이었어요. 아마도 그 친구는.. 2022. 1. 25.
이상기후 눈을 떠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는 A는 창밖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A는 커튼을 열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서있는 자신을 누군가가 그림으로 그린다면 어떨까. 그림 제목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 좋겠다. 창문을 살짝 열자, 기분 좋은 한기가 집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침에 내리는 비만큼 불공평을 상기시키는 것이 있을까? 우선 첫째로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터로 향해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한다. 아침의 속성이 본래 그러하여 누군가를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분리하지만, 비가 내리면 이는 더 극적이 된다. 다음으로 당신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자가용을 이용하는지를 더 극명하게 대비해 준다. 젖은.. 2022. 1. 24.
소개팅 관찰기 남자는 저벅저벅 카페로 들어왔다. 책을 들여다보던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 슬랙스, 단화, 오트밀 색 니트를 입고 안경을 끼고 있었다. 키는 175 정도 되어 보였다. 웨이브 진 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남자는 내 옆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카운터로 걸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작은 사이즈요.', '네 감사합니다.' 주문을 마친 그는 진동벨을 들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흔하게 찾아볼 수 있을 법한 남자였다. 30대 초반? 중반? 20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복장에도 인상에도 튀는 구석은 없었다. 차고 있는 시계나 신발이 뭔가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문외한인 나도 알 정도의 명품 브랜드는 아니었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 그 물건이 명품이.. 2022. 1. 24.
삶의 희극 B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교외로 나와서 바라보는 강물은 반짝거렸다. 이 나이 든 몸으로 이렇게 움직이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종종 그와 함께 이렇게 교외로 나왔다. 카페는 이제 많이 낡았다. 내가 앉아있는 이 철제 의자는 20년도 넘었다. ​ A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것은 밤이었다. B의 전화를 받고 나는 한동안 A를 잊고 살았던 것을 떠올렸다. B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올 것이 온 거지.' 나도 B도 충격받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제 80대고, 한국 남자의 1/3은 이 나이대에 생을 마감한다. 우리 세 명 중에 A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 A가 처음 이혼을 했다고 말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B와 나는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였다. 항상 B에게.. 2022.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