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작가 옌렌커의 책, '그해 여름 끝'입니다. 이 책은 총 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그해 여름 끝', 두 번째 작품인 '류향장', 세 번째 작품인 '한쪽 팔을 잊다'. 이렇게 3편입니다. 하지만 단편집은 아니고, 장편 소설인 '그해 여름 끝'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P14~P284), 30~50 페이지 정도의 단편 소설인 '류향장'과 '한쪽 팔을 잊다'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중국 소설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옌렌커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이면서, 동시에 이 책이 중국에서 발행 및 유통이 금지된 책이기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습니다만, 문체와 이야기 구조에 적응하기 까지 조금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습니다. 작가는 그해 여름 끝의 주인공 자오린의 눈을 통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하지만 작가는 자오린을 긍정하지 않습니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에서 작가가 주인공에게 동의하지 않는 느낌의 소설은 항상 어렵습니다. 아마도 쓰는 사람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체에서만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하여 독자들이 작품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하지만, 어느 인물에게도 온전한 응원도 비난도 하기 어렵습니다. 깊숙이 들어와 있음에도 담담히 사건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는 거죠.
그해 여름 끝은 중국군의 이야기입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중국군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중국군의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농민들은 그 농민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하여 군인이 되려고 하고, 또 가족들을 도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농민들은 군인이 되기 위하여 유력자들의 집에 가서는 무임금으로 노동을 하고, 시키지도 않은 노동을 하면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 애씁니다. 과거의 연과 은혜를 베푼 일을 중시하고, 사실상 미국적 가치인 '누가 이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뒷전입니다. 그러면서도 작품 내내 깔려있는 중국 농촌의 궁핍한 삶에 대한 묘사도 계속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하는 노력들이 유력자에게 연줄을 대는 것이 거의 유일해 보입니다. 거기다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군의 사상교육과 지도원의 존재, 부대에서 정치위원으로 이어지는 군과 정치의 통합까지. 작가는 이 것들을 비꼬지 않고 담담하게 써 내려갑니다. 28년을 군에 복무한 작가에게 이 모든 것은 소설이 아니라 기록에 가까워 보입니다.
'류향장'과 '한쪽 팔을 잊다' 역시, 궁핍한 중국 농촌의 실상을 담담하게 풀어나갑니다. 류향장은 마을의 젊은 사람들을 도시로 몰아내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오라고 압박합니다. 남자들은 막노동을, 여자들은 몸을 팔아서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어온 사람들은 마을의 영웅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가치판단적 메시지들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들을 담담히 보여줄 뿐입니다. '한쪽 팔을 잊다'는 이보다 더 궁핍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도시로 내몰려서 막노동으로 돈을 벌던 청년이 사고로 죽고, 그 청년의 한쪽 팔을 공사장에서 발견한 청년이 고향에 그 팔을 가져다 놓는 이야기입니다. 일견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이 너무나 비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화, 세계화는 빈부의 격차를 현격히 벌려놓았죠. 다만 유럽에서는 그 과정이 긴 기간에 일어나면서 세대 간의 갈등,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를 매워가면서 일어났다면, 미국은 그보다 빨리, 한국은 그보다 빨리, 그리고 중국은 세계의 어디보다 빠르게 그 과정을 겪으면서 그 격차가 현격히 벌어졌죠. 그리고 그 격차를 매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돈뿐이었습니다. 이제 유럽 사람들처럼 점잖은 척해서는 그 차이를 메울 수가 없는 거죠.
이 소설에서 보이는 중국의 농촌과 도시의 차이는 거의 시대가 다른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격차를 매울 돈은 오직 사람을 갈아 넣어서만 매울 수 있죠. 그것이 돈은 중시하고 사람은 천시하는 현실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작가는 이와 같은 현실을 너무나 잘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굴러갑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 사회에 공통으로 통용되는 유일한 가치는 오직 돈이 되어버립니다. 이 모든 것이 너무 안타깝다면, 아직도 나약하고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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