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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카를로 로벨리

by 읽고보고맛보고 2021. 10. 25.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책을 제법 많이 쓰는 물리학자이며, 물리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힘쓰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전작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고서 그의 팬이 되었죠. 두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하여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책은 수식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는 두권을 읽었는데도 리뷰를 읽기 전까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난해한 그림들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이론서는 아닙니다. 특히나 이 작품은 카를로 로벨리의 자서전적이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카를로 로벨리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대학교 3학년에 양자역학의 세계에 빠져들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연구를 해오고 있는지를 쭉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 이어진 그의 연구과정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습니다.

 

그가 많은 페이지를 들여서 설명하고 있는 루프이론에 대하여 저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그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의 개념을 통합한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을 위하여 연구를 계속하였고, 그 과정에서 루프 이론을 탄생시켰습니다. 물론 끈이론과 마찬가지로 아직 실증된 바는 없지만, 과학자들은 이 험난한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가 얘기하는 시공간에 대한 설명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뉴턴식 절대공간, 절대시간의 개념이 상대성이론과 함께 무너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에 대한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실제로 시간, 공간이란 개념은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쉽게 어떤 절대적인 공간축과 시간축이 우주에 존재한다고 믿지만, 사실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죠. '지금 이 순간에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같은 문장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죠. 카를로 로벨리는 열 시간을 주장하며,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사실 불가역성의 방향이며, 이는 열이 식는 방향,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로벨리는 뉴턴역학이 지구에서의 많은 공학 문제에서 효과적임을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뉴턴 역학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입증된 이후로 우리는 뉴턴 역학이 근사치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시상수 t를 내세워서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감각을 교정하는 것, 그리고 시상수 t를 버리고, 운동의 기술에서 시간을 제외하는 것이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우리의 여정에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카를로 로벨리는 이 책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과학적 사고와 연구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오만한 과학의 태도가 지금에와서 대중의 불신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지만,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해서 우리가 발견해낸 설명들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죠. 일반상대성이론이 탄생했지만, 뉴턴 역학이 아직도 우리에게 훌륭한 근삿값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과학은 생각을 구축하지만 그 구축을 의심하는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며 과학에 대하여 행하는 무분별한 불신도, 알려진 이론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검증된 결과들과 실증된 이론들, 그리고 실증되지 않은 이론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 대하여도 말합니다. 사실 우리 중 상당수는 '끈이론'이 증명되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할겁니다.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과 '비가환기하학', '대통일이론', '초대칭이론', '다중우주론' 등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젊은 과학자들조차 이를 혼동하기도 한다고 말하죠. 

 

물리학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면, 과학자의 인물에만 집중하여 이론적 설명을 등한시하는 책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알아듣지 못하는 이론에 대한 어려운 설명과 수식들로 가득하여 입문조차 어려운 책도 두려운 분들에게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자들이 대체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천천히 설명해 줍니다. 물리학이 무서운 분들이라도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주변 시간 흐름에 대하여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하는 분들에게 카를로 로벨리는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물론 모든 내용을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신다는 분이 아니라는 전재하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