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근작, 백조와 박쥐입니다. 어두운 책 표지와 의미심장한 띠지의 문구는 어둡고, 우울한 소설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은 그렇게 어둡지 않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답다고 해야 할까요.
작품은 한 살인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형사들의 수사 과정을 그답게 다루지요. 그리고 일견 사견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책의 절반도 아직 다 읽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피해자의 딸과 범인의 아들이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면서 전개됩니다. 엄청나게 참신하진 않지만, 이런 정통 추리소설이 많지 않은 근래에 저처럼 정기적으로 추리소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반가운 작품입니다.
일본 소설은 장르소설이 한국보다 훨씬 많은 편입니다. 추리소설도 많이 출판하고 있죠. 국내에도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시마다 소지같은 작가들도 있죠.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들에도 보통 어떤 메시지와 문제의식을 담아내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영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대중성이 높은 일본 콘텐츠들에서 대체적으로 보이는 특징이죠. 보통 이런 과한 '설교'는 작품을 가볍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까지 주게 만들어 버리고는 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이런 느낌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가 작품들에 깔아두는 메시지는 비교적 일관되고 너무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가해자의 가족에 대하여 서술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가해자의 가족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부각된 적이 없어 저는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는지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의 가해자의 가족들은 보통 직업을 잃고, 일상을 빼앗기고, 손가락질받으며 도망치게 됩니다. 연좌제에 가까운 이런 사회 분위기에 대하여 히가시노 게이고는 몇 차례 쓰고 문제제기를 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처벌의 문제입니다. 피해자의 유가족의 상처와 사형제도에 대하여도 몇 차례 서술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깊이 있는 담론을 담아내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이 담론들에 대하여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우 다작을 하는 작가입니다. 책을 찍어내는 공장장같은 작가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서 떨어지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작품 역시 얇지 않은 작품이지만, 페이지는 쉽게 쉽게 넘어갑니다. 소설을 읽고 싶지만 고전 명작들은 부담스럽기에 일단 아주 편한 장르소설로 소설 읽기를 시작해보고 싶으신 분, 그중 특별히 일본 소설에 거부감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추천하기에 적합한 작가와 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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