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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비둘기피리 꽃, 미야베 미유키

by 읽고보고맛보고 2021. 11. 15.

일본의 유명 장르 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비둘기피리 꽃'입니다. 책은 총 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러질 때까지', '번제燔祭', '비둘기피리꽃' 이렇게 3편의 이야기는 모두 독립적입니다만, 모두 초능력을 가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특별한 힘과 그에 따른 특별한 비극에 대하여 적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그 힘으로 인하여 고통받게 됩니다. 물론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은 3명의 주인공이 모두 다르지만 말이죠.

장르 소설인만큼 작가가 큰 주제의식을 가지고 이 이야기들을 만들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이 작품에서 3명의 주인공의 대처 방식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극적인 초능력과 그에 따르는 비극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고 자기만의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만의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때로는 불운입니다. 한번쯤은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과 함께 어떤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죠.

 

%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스러질 때까지'의 주인공인 도모코는 예지몽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주인공 도모코는 자신의 능력을 잊고 오랫동안 살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만나고 이를 해결하면서 어린 시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예지몽의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린 시절 자신의 끔찍한 두통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예지들과 관련한 부모님의 고통도 알게 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지나치게 일본적인 감성이라 공감이 잘 되지는 않지만, 결국 도모코는 부모님이 자신의 예지능력으로 인하여 동반 자살을 결심하고 사고를 일으킨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죠. 도모코는 괴로워하고 자살을 결심하지만, 주변 사람들로 인하여 구해지고 과거의 꿈을 통하여 부모님의 사고가 자살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능력과 함께 세상에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죠.

두 번째 이야기인 '번제燔祭'는 더 섬찟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화자인 가즈키는 극악무도한 범죄로 인해 여동생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절망에 빠져있던 그에게 눈에 띄지 않는 회사의 계약직 사원 준코가 접근하죠. 그녀는 염화 능력자로 여동생을 살해한 용의자를 그녀의 능력으로 죽여주겠다고 합니다. 계획은 차곡차곡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 장면에 가서 가즈키는 이 복수를 그만둡니다. 가즈키가 복수를 포기했음에도 가즈키의 앞에서 사라진 준코는 이 살인 계획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준코는 기어코 범죄자 일당을 모두 살해하죠. 스스로를 장전된 총이라고 부르는 준코는 자신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며 사라집니다.

세 번째 이야기인 '비둘기피리 꽃'의 주인공인 다카코는 형사입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옷가지 등에 손이 닿을 때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능력이죠. 그녀는 그 능력을 통하여 형사로서 인정받게 되지만, 자신의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몸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죠.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사라짐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무능해지고, 이와 동시에 누구에게도 자신의 쇠약해짐을 고치게 할 수 없다는 절망으로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형사 오키의 헌신과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수사에 기여하는 경험을 통하여 어느 정도 회복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도 다카코는 괴로운 현기증을 느낍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도모코는 세편의 이야기 중 가장 자신과 화해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이 능력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방법을 찾겠다는 결심을 하죠. 세편 중 가장 자신의 능력과 화해한 경우라고 해야겠네요. 두 번째 이야기의 준코는 감정적으로 격한 상태가 되면 통제가 되지 않는 능력 탓에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아갑니다. 삶의 태도 역시 완전히 능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신을 장전된 총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능력 이외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능력에 완전히 매몰되었다고 해야겠네요. 세 번째 이야기의 다카코는 능력을 제외한 자신도 가치가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아직 그녀가 가진 능력의 부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을 대하는 것도 때로는 이와 같아서 어떤 사람은 직업이나 학벌같은 것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그 안에 완전히 매몰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틀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물론 때로는 자신을 정의하는 속박들을 벗어던지고 자아를 정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가 어떤 상태에 있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