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이라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요? 동정과 같은 걸까요? 분명히 두 단어는 유사한 상황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동정을 베풀다'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연민을 베풀다'는 말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휘력이 부족해서 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연민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정이 어떤 상태, 또는 행위라면 연민은 더 나의 감정 상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닐까요? '타인의 동정심'에 대하여는 논할 수 있을지 몰라도, '타인의 연민심'에 대하여 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동정' 은 대상 중심적인 만큼 대상에 대한 평가가 개입되지만 '연민' 은 나의 마음인 만큼 대상에 대하여 평가하지 않고도 생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소설에 서려있는 정서는 다른 많은 우리 예술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한'을 많이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잘 알지 못하는 격동의 시기를 거쳐온 우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정서 일지 모릅니다. 이 '한' 은 분노와도 복수와도 체념과도 다릅니다. 그것은 분노이지만 격렬하지 않고, 복수이지만 헤하려들지 않습니다. 또 체념이지만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한' 은 결코 잊히지 않고, 또 벗어나게 되지도 않습니다.
김훈 작가의 이 작품은 비참함을 조금 걷어내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하지만 훌륭하게 한 서린 문장들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과 인물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복역 중인 아버지, 히스테릭한 어머니, 그리고 민통선, 그리고 적과 아군의 유골들. 하지만 누구 하나 어느 하나 쉽사리 반대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한 서린 삶을 살아내었습니다. 저는 그저 인물들 하나하나에 연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 모두는 주체적이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도 않고, 개선을 위하여 싸우는 이들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 모두는 하루하루를 견뎌냅니다. 한 서린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삶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떠나갑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떠나감 역시 주체적인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휘둘리는 것이 삶이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더 홀가분해졌습니다. 그것을 '행복' 같은 말로 부르면 그 삶이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것은 인물들의 '한'이라는 것이 쉽게 설명해서는 안될 것 같은 단어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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