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수의 우리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핸드폰 알람을 통해서, 그 건축 구조를 모르는 집에서 잠을 깹니다.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수도 시설을 이용하여 샤워를 하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샴푸로 머리를 감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도로를 달리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는 버스 또는 지하철 또는 승용차를 탑니다. 그리고 대체 어떤 구조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여서 돈을 법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어 내 앞으로 오는지 알기 어려운 음식을 먹게 되죠. 물론 이 과정 중의 일부에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점점 더 우리 사회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벤담의 공리주의, 칸트의 순수이성,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 니체의 철인까지 우리는 모든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중 무엇이 옳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직진하는 열차에 타있다고 해봅시다. 이 멈출 수 없는 열차를 그대로 두면 5명의 사람을 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방향을 꺾으면 1명의 사람만 치게 된다고 해 보겠습니다. 아마도 벤담이라면 당연히 방향을 꺾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는 그 5명이 누구인지, 또 그 한 명이 누구인지까지 복잡한 계산이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만, 단순화시켜서 생각하면 대부분의 경우 벤담은 방향을 꺾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칸트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옳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벤담도 칸트도 니체도 아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정의합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도덕을 분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제 우리는 누군가가 바이어들과 회의를 위해 준비하는 커피를 위하여 한 아이의 삶이 망가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커피를 마시는 누구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 사태의 죄책감과 우리를 분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도덕과 실제가 괴리되고 이해와 현실이 괴리되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생각하면서 사는 걸까요? 정보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통계와 원리를 분석하기 보다는 편집된 정보의 신뢰성이 중요해졌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보다 주관적인 해석이 중요하고, 진위 여부도 알기 어려운 객관적 정보보다 날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정보 제공자가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정보량을 편집하기도 힘이 들어 더 이상 생각 같은 것을 할 여력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내 눈앞에 없는 어떤 넓은 세상에 대해서는 더더군다나 그러합니다. 이제 우리의 사고방식은 다시 본능적인 것으로 회귀합니다. 우리를 진화의 승자로 이끌어준 그 승리의 유전자에게 판단을 위탁합니다.
저자는 이제 생각하지 않는 우리가 대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명철하게 분석하였습니다. 그가 임의로 분류한 각각의 본능은 사실 모두 복합적이며, 따로 떨어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다만 저자는 그것이 만들어내고 있는 오류에 따라,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의 오류들을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분류했다고 생각합니다.
명철하게 생각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앞으로는 이것들을 경계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 아마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마는 것은, 우리가 본능에 판단을 위탁하여 잘못 정립된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에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백명을 살리고자 한명을 죽이는 것, 만약 그 한명이 내 부모라면, 내 아이라면, 또는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성적으로 명철하게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만, 다만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게 생각하는 존재인지 그것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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