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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by 읽고보고맛보고 2022. 2. 14.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자신의 삶과 작품 전체를 상징하는, 그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옮긴이의 말) 본문은 총 132 페이지에서 끝납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던 작가가 이 짧은 책을 일생의 역작으로 고백했다고 했습니다. 보후밀 흐라발은 1914년에 체코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다른 체코의 국민작가 밀란 쿤데라와 많이 비교되었다고도 합니다. 1900년대 초중반을 관통하는 세계대전 시기, 그리고 이후의 소련에 의한 점령 시기를 지나면서 두 작가의 행보는 비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로 망명하여 불어로 책을 쓴 반면에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를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전업 작가가 될 수 없었던 흐라발은 아주 많은 직업을 가졌었고, 그의 책들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금서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흐라발은 계속해서 글을 썼고 그의 삶이 그의 작품들에 녹아 있습니다.

 

 실제로 노동자로서 삶을 살았던 작가의 체험이 살아있기에 그는 주인공 한탸의 일인칭 고백을 적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길지 않습니다. 폐지 압축공 한탸의 말년 모습, 그리고 몇몇 사건에 대한 회상을 덧붙임 없이 담담하게 적어내고 있습니다. 그는 폐지 압축공으로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았습니다. 쥐와 폐지, 기름때가 범벅인 지하에서 인류의 유산과 함께 일을 하면서 놀라운 지식들을 갖추게 됩니다. 비록 그는 끊임없이 인류의 위대한 유산들을 압축하는 일을 하지만 그는 그 나름의 엄숙한 의식으로 인류의 지식들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소장의 입을 빌려 벌게진 얼굴로 빨리 움직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마침내는 더 효율적으로 더 거대한 방식으로 그를 대체한 세상은 그의 의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더 거대한 압축기의 세상에서 주인공 한탸는 더 이상 칸트에게 나체에게 경의를 표할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의를 표할 수 없다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그는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작가가 이 소설을 그렇게 사랑했는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무심함에 서글퍼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탸는 그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맥주 한잔의 기쁨을 잊지 않았고,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짧은 책이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