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넷플릭스 영화로 출시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자기 앞의 생'입니다. 하지만 영화화되기 이전부터 매우 유명한 책입니다. 책 자체도 매우 훌륭하지만 이 책에는 책 외적인 사연까지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롭죠.
작가는 에밀 아자르 입니다. 하지만 이건 필명입니다. 프랑스에서 처음 이 책을 발간할 때 작가는 자신을 숨깁니다. 물론 1900년대 중후반 무렵이니,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을 숨겨야만 숨길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죠. 그는 왜 자신을 숨겼을까요? 왜냐하면 이 책을 쓴 작가는 '로맹 가리'입니다. 역사상 유일하게 콩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이죠.
로맹 가리는 그 일대기만 읽어봐도 정말 흥미진진한 인물입니다. 러시아 태생의 그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하여, 이후에 프랑스로 귀화하여 프랑스인으로서 살았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했을때는 공군 파일럿으로 참전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만큼 무훈을 세웠습니다. 그 유명한 샤를르 드골과도 인연이 있죠. 그리고 전쟁 후에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외교관으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그는 파일럿 시절에도 외교관이었던 시절에도 소설을 발표합니다. '유럽의 교육', '하늘의 뿌리'같은 작품들이죠. 정말 엄청난 소설들입니다.
이후에 그의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되면서 영화에도 참여하였고, 당시 여배우였던 진 세버그와 사랑에 빠져서 이혼을 하고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집필활동을 이어갔죠. 그리고 1980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죠. 너무 많이 생략을 했지만, 자세한 게 궁금하신 분들은 그의 삶을 다룬 아주 '내 삶의 의미'라는 책을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정말로 파란만장한 사람입니다.
로맹 가리는 평론가들을 매우 싫어했던 걸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말년에 많은 평론가들에게 혹평에 시달렸죠. 그러자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그로칼랭'이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책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죠. 문학계는 새로운 천재의 등장에 환호하고,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로맹 가리의 시대는 끝났다. 에밀 아자르의 시대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는 한 작가에게는 단 한 번만 주어지는 콩쿠르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로맹 가리의 사후에 에밀 아자르라고 알려졌던 로맹 가리의 5촌 조카 폴 파블로비치가 '우리가 알았던 그 사람'에서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이후에 로맹 가리가 미리 출판사에 맡겨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출간되면서 에밀 아자르의 정체는 온 세상에 드러나죠. 문학계가 받은 충격은 아마 쉽사리 상상이 가실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면, 에밀 아자르로서 로맹 가리가 쓴 책 '자기 앞의 생'은 14살의 주인공 '모모'를 화자로 내세웁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눈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차별에 대하여, 빈곤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형태에 대하여, 가족이란 것에 대하여, 친구에 대하여,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다른 것들을 말합니다. 창녀의 자식들을 돈을 받고 돌보던 로자 아주머니, 그리고 그 복잡한 거리의 이웃들은 모두 자기들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몸을 파는 남자 그리고 여자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 아랍계들, 출신도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나이조차 알 수 없는 주인공 모모가 그 세계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과는 다르지만, 그들의 규칙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묘한 균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과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로맹 가리는 일깨워 줍니다.
로자 아주머니와 모모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양어머니라고 할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남녀사이는 더더욱 아니죠. 하지만 그 관계는 분명히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단어에 얽매여서 관계는 정의하려 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관계는 분명히 사랑이고, 헤어질 수 없는 그런 사이인데 말이죠. 분명히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를, 로자 아주머니는 모모를 위해줍니다. 다만 그것이 보통 세상이 말하는 위해주는 것과는 달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습니다.
모모가 바라봐온 세상은 의사 선생님같은 사람들이 바라봐온 세상과는 다릅니다. 로맹 가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삶의 형태가 당신이 아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말입니다. 모모는 그 거리에서 우리가 아이들이 봐서는 안된다고, 알아서는 안된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분명히 순수합니다. 사랑스러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답죠.
모모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무섭고, 아픈 그런 것이었을까요. 아마도 아닐꺼라고 생각합니다. 모모는 끊임없이 로자 아주머니가 죽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로자 아주머니가 죽기를, 이제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끊임없이 바랍니다. 이보다 순수하고 위대한 사랑이 있을까 싶습니다. 정말로 순수하게 그 사람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죠. 그래서 그 아이의 행동들에서 어리석음이나 슬픔보다 숭고함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순수함과 어리석음이 종이한장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비슷할 때가 많죠. 하지만 뭔가를 알아가는 것이 항상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원레 그렇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체념의 원인을 세상에서 찾고자 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모모처럼 사랑하고서야 세상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도 않고서 자신의 체념을 세상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으로 포장하는 것은 너무하네요. 그럴 바에야 조금 어리석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0) | 2021.02.18 |
---|---|
GAFA 이후의 세계, 고바야시 히로토 (0) | 2021.02.06 |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0) | 2021.01.09 |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0) | 2020.12.31 |
밤하늘 아래, 마스다 미리 (0) | 2020.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