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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by 읽고보고맛보고 2021. 1. 9.

유명한 SF 작가인 테드 창의 작품입니다. 물론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영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로 잘 알려져 있죠. 매우 어려운 영화죠. 4차원적 존재와 그 언어에 대한 작품이죠. 정말 책도 영화도 매우 좋은 작품입니다. 그것에 대하여는 다음에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비교적 덜 알려져있죠. 장편을 쓰지 않는 테드 창에게는 중편소설 정도인 이 작품도 매우 긴 편입니다. 이 작품은 AI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디지털 게놈으로 탄생한 '디지언트'를 통하여 말입니다. 그 소프트웨어 객체가 디지털에서 탄생하고, 자라면서 인간과 교류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죠. 주인공인 애나와 데릭, 그리고 그들의 디지언트인 잭스, 마르코, 그리고 폴로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긴 합니다만, 그 외 다른 회사에서 여러 목적으로 탄생시킨 디지언트들을 통하여 다른 형태의 AI에 대하여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10년에 쓰여졌습니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선견지명도 대단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이 옛날로 느껴질 만큼 우리의 AI 연구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고작 10년인데도 우리가 얼마나 놀랍게 변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테드 창은 이 작품에서 AI 생명체가 성장하는 것은 단순, 반복적인 연산의 총합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감정과 경험이 이루어내는 고차원적 경험들이 AI의 탄생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잭스, 마르코, 그리고 폴로의 발전 과정을 묘사하는 저자의 태도는 분명히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010년 인텔의 CPU가 무어의 법칙으로 발전하여 언젠가 AI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텔은 더 복잡하고, 더 난해한 연산을 빠르게 수행하는 CPU를 계속해서 탄생시켰죠. 연산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고, 언젠가 더 복잡하고 난해한 우리 뇌에 CPU가 도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NVIDIA의 GPU, 단순 연산을 엄청나게 수행하는 병렬 연산의 최고기기인 GPU 기반의 AlphaGo가 바둑을 두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딥러닝과 GPU는 우리의 뇌가 사실은 훨씬 더 단순한 연산의 병렬 연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과 같았습니다. 딥러닝은 엄청난 연산량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복잡한 연산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뉴런은 그것과 더 유사하죠. 그리고 감정과 복잡한 사고는 그 복잡한 연산에서 탄생한 부산물로 사실은 단순한 연산을 우리가 스스로 포장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테드 창은 AI 생명체의 성장은 가속화된 경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었습니다. 온전한 감정과 실시간성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딥러닝이 빅데이터를 통하여 얻어내는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하여 AI가 '마치 사람처럼' 판단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 의견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것은 그가 바라본 것처럼 대단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AI 의 발전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과소평가된 부분도 과대평가된 부분도 밝혀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보여주었던 10년 전의 AI에 대한 태도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도 분명히 변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AI 시대는 정말로 어떻게 올까요. 어쩌면 10년이 지나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