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읽었던 책입니다만,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다시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이 책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개츠비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지고지순한 순애보였습니다. 그는 오직 데이지를 위하여 살았고, 결국 그로 인해 죽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위대한' 인물이었죠. 대단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 소설이 어째서 그렇게나 높은 평가를 받는지는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개츠비의 이야기 자체보다 이 책이 설명하는 1차 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미국을 묘사한 부분들, 그리고 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문체와 표현으로 이 책이 그렇게나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은 개츠비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때의 저와 많이 달라져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이야기는 지금 제가 읽은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개츠비의 사랑은 '위대' 했을까요? 그의 사랑을 받는 데이지는 결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어울리는 여성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순수하고 성스러운 공주님도 아니고, 진취적이고 주체적인 여성도 아니었습니다. 이 캐릭터는 좋아하기 어려운 충동적이면서 수동적인 그런 인물이었죠.
개츠비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데이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오히려 그러고자 하는 스스로의 다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가 스스로 '제이 개츠비'가 되었던 것처럼, 그는 데이지에게 헌신하고 그녀를 사랑함으로써 그가 원한 '위대한 개츠비'가 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옥스퍼드 출신으로 데이지 캐러웨이와 결혼한 사람 말입니다. 물론 모든 사랑은 자기중심적입니다만, 개츠비의 그 모습을 순수한 사랑의 자기중심적인 면모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영하 씨는 이 작품을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고 요약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사랑들도 이와 같아서, 어이없는 곳으로 화살을 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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