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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리뷰

오징어 게임, NETFLIX

by 읽고보고맛보고 2021. 9. 21.

9월 17일에 공개된 따끈따끈한 신작, 오징어 게임입니다. 시즌1, 총 9부작으로 각 회는 한 시간 분량입니다. 이정재를 주인공으로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며, 카메오들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데드 게임' 장르라고 해야 할까요? 정확히 이런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장르 구분이 있다면 그 장르의 한 작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런 장르 구분이 없다면 새로 추가할만할 것 같습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 '신이 말하는 대로', '라이어 게임', '헝거 게임', 뭐 크게 봐서는 '배틀 로얄' 같은 작품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네요.

 

이 장르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 노선으로 재미를 주고는 합니다. 첫 번째는 통제 환경에서의 인간 행동 연구, 그리고 두 번째는 추리 소설과 같은 기가 막힌 어떤 트리키 한 사람들의 행동이죠.

 

1970년대 미국에서는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포드 감옥 실험이 시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하여 짐바르도 교수는 매우 유명해졌고, 최근에는 그의 실험이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반론이 있고 저 역시 개인적으로 이 실험이 인간의 본성을 말해준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 결과의 신뢰성은 차치하고,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사실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인간의 악랄함과 잔인함에 대하여 세상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호모 사피엔스는 보편적으로 상황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악랄한 행동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음을 설명한 실험이었죠.

이때부터 인간의 내재된 악에 대하여 많은 연구들이 있었고, 예술 작품들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법과 규칙에 얼매이지 않은 인간 본성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작품들이 세상에 많이 등장하게 되죠. 그리고 그중 이와 같은 통제 환경,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데드 게임 장르는 이와 같은 통제 환경에서 인간 행동을 보여주기 아주 좋은 장르입니다. 매우 다수의 인물을 배치할 수 있고, 그들을 통하여 캐릭터성이 강조되지 않은 무리 행동과 어떤 계층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지금 우리 사회가 아닌 곳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노인, 어린아이, 여자, 남자, 폭력배, 엘리트 등 이와 같은 데드 게임 장르는 반드시 이런 다양한 계층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캐릭터와 다수 간의 갈등,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갈등을 보여주고는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죠.

"당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사고 실험을 배우 그리고 감독과 함께 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샌가 작품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추리 소설과 같은 트리키한 플레이는 좀 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같은 순간이죠. 추리 소설이 범죄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와 같은 데드 게임 장르는 더 다양한 상황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악역이 되는 반대편을 주인공이 놀라운 방식으로 이겨내면서 우리에게 '사이다'를 제공하는 것이죠. 반대편은 게임의 참가자가 되기도 하고, 주최 측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죠. 물론 이는 쉽지 않습니다. 규칙이 너무 간단하면 트리키 한 플레이를 설계할 수가 없고, 규칙이 너무 복잡하면 이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고 맙니다. 일례로 이 장르의 고전이자 매우 유명한 작품인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보면 첫 게임인 '카드 가위, 바위, 보'에서는 간단한 규칙을 가지면서 동시에 놀라운 발상을 보여주지만, 작품이 계속 진행되면서 '변형 포커', '변형 마작' 등 에서는 그 첫 게임만큼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걸 느낄 수 있죠.

 

※ 스포일러는 최대한 배재하고 작성하였습니다만, 작품 내용에 대한 설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와서 오징어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사실 이 작품은 위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하는데 실패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재미가 있냐 없냐를 따지면 저는 전자에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하지만 이 그렇다고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는 의문 부호가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측면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저 통제 상황에서 인간 행동을 잘 묘사하고 있을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작품과 같은 통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인물 행동들이 맞다 틀리다를 세부적으로 논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작품에는 전형적인 많은 수의 캐릭터가 등장하였고, 영상적으로 분위기를 잘 만들었습니다. 조금은 기괴해 보이는 색감과 분위기로 실험 현장 같은 느낌을 만들어냈죠.

시대착오적인 인물 설정이었다거나, 과거 어떤 작품과 인물 구성이 너무 비슷하다면 그것은 장르적 유사성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비판은 이러한 류의 작품이 장르화 되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런 비판은 조금 과하다고 생각되고 이런 것까지 꼬집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 캐릭터를 충분히 만족스럽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주/조연급 인물들의 연기에도 어색함이 있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다수의 엑스트라가 등장해야 하는 작품인 만큼 그 엑스트라 캐릭터들의 자연스러운 군중 연기가 어색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연기가 어색했던 이유는 각본의 문제가 더 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물론 캐릭터는 변화해야 합니다. 통제 사회 속에서 캐릭터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변화 과정에 필요할까 싶은 다소 과한 인물 설정들이 있고, 그리고 변화 과정의 설득력도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이 설득력 있는 연기를 펼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쉽게 흘러갑니다. 이야기는 인물보다 전체를 담아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이 통제 사회를 현실에 대한 패러디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완성도는 차치하고 그 의도에 있어서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 '기생충'에서 엿보였던 현실의 단순화 또는 희화화된 표현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잔혹성이 강조된 표현이라고 해야겠네요. 그 과정에서 시간에 대하여 강조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인물들을 시간에 쫓기게 만들기도 하고, 최후에는 시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등장합니다. 이를 위하여 영화는 복잡성을 포기하고 단순한 서사를 속도감 있게 보여주는 것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공정하지 못한 오징어 게임이 현실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일생에서 겪는 잔혹한 승부들을 단순화시키고 한대 뭉쳐서 그 모든 페널티를 빨리 감기로 받아내면 이런 형태가 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두 번째 측면에서 보자면 사실 이 작품은 어떤 트리키 한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번뜩이는 발상으로 게임 룰의 허점을 피해 가거나 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최대한 속도감에 집중하기 위하여 게임 자체는 매우 단순화시킨 것 같습니다. 어려운 구성이나 복잡한 룰을 피하고 게임을 보는 사람이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아주 일부 장면에서 이 작품 유일의 엘리트 캐릭터인 '상우'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서 상황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모습이 아주 혁신적이지는 않습니다. 작품은 오히려 우리가 잘 알지만 동시에 낯설기도 한 어린 시절의 게임들을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켜서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의 부담을 덜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느끼게 해 줍니다. 게임의 룰에 대한 추가 이해 없이도 게임들을 즐길 수 있는 거죠. 물론 그 점을 감안해도 다소 아쉬운 게임 구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앞의 리뷰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잔혹성에 대한 패러디라고 본다면 이 단순화한 게임 구성과 '운'이 가장 핵심이 되는 승패 결정 방식은 오히려 이 잔혹성을 한층 살려주는 장치가 됩니다. 어떤 능력도 이 게임에서 승리를 보장해 주지는 못하니까요.

 

전반적으로 혹평이 많은 리뷰가 되었습니다만, 재미는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던 이와 같은 장르적 작품의 재미에서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들이 많고, 특히나 꽉 짜이지 못한 서사와 캐릭터들에 실망하게 될지 모릅니다. 다만 이 작품이 우리 사회를 패러디하고 싶었고, 이를 위하여 많은 장치 (운동장, 골목, 가면, 운동복, 실내화, 익숙한 게임, 익숙한 캐릭터)로 현실 같지만 괴상한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속도감 있게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서사 구조의 허술함도 크게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연기에 대하여도 혹평을 했지만, 주인공인 이정재 배우의 연기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개인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자칫하면 너무 과해 지거나 일관성을 잃어버리기 쉬울 것 같은데 그걸 잘 잡아가면서 연기를 소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즌2가 확실시되는 만큼 더 발전할 여지도 충분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출과 이야기의 속도감도 나쁘지 않았기에, 좀 더 게임 자체의 재미와 장르적 재미를 살린다면 더 재밌어질 여지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첫 시즌이라 더 의도적으로 속도감과 전체적 맥락에 집중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 장르로 대려 오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마 이런 장르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을수록 더 재밌다고 생각할만한 작품인 것도 같으니까요.

 

이와 같은 장르의 팬이라면 다소 아쉽겠지만 그럼에도 재밌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이 장르의 영화들 몇 편을 접해보신 분이라면 과거 작품들의 표절이 아닌가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이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입문 차원에서 이보다 나은 작품이 많지는 않을 것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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