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와 G는 종종 술을 마시러 오고는 했다. F가 해외에 있을 때가 많아서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그 둘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조심할 것이 없는 사이임은 분명해 보였다.
F는 여행작가였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으며, 에세이를 쓰고, 사진전을 열고, 사진집을 출간하여 돈을 벌었다. 그는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았지만, F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F는 돈을 모으지 않았다. 그는 벌이가 괜찮을 때는 그에 맞는 생활을 했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겨 마셨고, 고급 음식점을 매일 출입했다. 그는 고급 호텔로 여행을 떠나서, 그 나라의 유명한 레스토랑과 음식들을 섭렵하고는 했다. 유명한 휴양지들에서 최고급 서비스를 받고, 그에 대하여 글을 쓰고는 했다. 하지만 그는 종종 벌이가 나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그는 G에게서 소주를 얻어 마시고, 변두리의 작은 선술집을 찾고는 했다. 그럴 때 그는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를 즐겨 마셨다. 그리고는 주로 물가가 아주 싼 나라들로 배낭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그는 항상 에너지가 넘쳐났고, 세상에서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은 남자였다. 그는 항상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았고, 주위에 친구도 애인도 넘쳐나고는 했다.
G는 대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여, 현재 11년 차 직장인이었다. 그는 뭔가 연구 개발 관련 업무를 한다고 했다. 그는 그가 거의 모든 업무를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처리한다고 했다. 언제나 아침 8시 반까지 출근했고, 주로 오후 8시 경에 퇴근한다고 했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고정적인 수입을 벌고 있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릴 만큼은 아니었다. 업무의 과중함에 짓눌릴 만큼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편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직장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거나 상사의 총애를 받고 있지는 않았지만, 동료들은 그를 인정하고 있었고 상사들도 그를 믿을만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우울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결코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말수가 많지 않았고, 휴일은 주로 혼자 보내고는 하는 것 같았다.
G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는 F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말하는 척 했다.
"여행 작가 같은 건 정말 엉터리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것을 원해요. 사무실을 박차고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굴뚝같죠. 하지만 묵묵히 이 사회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어요.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말이죠. 그런 사람들의 일탈의 욕구를 대신 이뤄주는 게 여행 작가 같은 사람들이죠. 그들은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여행을 떠나요. 그리고는 사람들의 욕구를 대신 이뤄주는 대가로 돈을 받죠. 거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해 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그러고서는 당신도 용기를 가지고 떠나라고,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요' 같은 소리를 해대죠. 그들은 좀 더 묵묵히 사회에서 일을 하는 이들에게 존경심을 가져야 해요. 물론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을 대리 만족시켜주면서 돈을 버는 이들이 이 족속들뿐만이 아니지만, 그들 모두는 다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존경심을 가져야 해요. 우리 사회는 정말이지 엉터리들이 마치 대단한 사람 인양 떠받드는 그게 너무 심해서 못 봐줄 지경이에요."
F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한 번도 애플에게 아이폰을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난 빌 게이츠에게 윈도우즈 같은 걸 만들어 달라고 한 적도 없다고요. 그런 게 없어도 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요. 비행기가 날 수 없다면 그저 두발로 떠나면 그만이에요. 난 용기 없는 이들의 변명을 수도 없이 들었어요. 그들은 떠날 용기가 없는 주제에 '일상'이라는 핑계를 대고 앉았다니까요. 진짜 원하는 것을 찾으라는 말에 굴복하면 그들은 자기 인생이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나 봐요.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는 하죠. 그렇지만 그거 정말로 중요한 일들이에요? 제 생각엔 그런 일은 정말로 몇 되지도 않는대, 타성에 젖어서 굴러가는 대로 굴러가는 사람들이 매일 그런 말을 한다니까요.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멋대로 세상에 너무 많은 일들을 중요한 것처럼 취급해요. 그래서 너무 많은 엉터리 것들이 무슨 엄청나게 심각한 일인 양 떠받들어진다니까요."
난 그저 듣고만 있었지만, 그 둘은 오늘도 그렇게 옥식각신하고 있었다. 오늘도 술자리는 꽤나 길어질 것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