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가족
병상에 있는 친구를 만난 것이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6인실의 오른쪽 세 개의 병상 중 가장 창가 쪽이었습니다. 커튼은 쳐두지 않았더군요. 블라인드가 올라가 있는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지도, 티브이를 보지도 않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자고 있던 것도 아니었죠.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지만, 정면에 있는 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선에 초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멍 때리는 것과는 다른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침대로 다가갔습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친구는 저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묘한 표정으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저를 반기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표정이었어요. 아마도 그 친구는 이 지루한 시간을 달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희망은 별로 없었기에 그런 표정이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딱 그런 표정이었어요. 왜냐면 저도 그 친구와 딱히 나눌 이야기는 없었거든요.
의리라는 것이 있을만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냥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였거든요. 그나마도 둘이서만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친구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뭔가 센스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가끔씩 하는 말도 딱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죠. 그런 사람 있잖아요. 뭔가 다른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게 없는 사람이오. 매력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뭐라고 할까요. 문제라고 할만한 게 전혀 없고, 굳이 따지자면 말수가 조금 적다 뿐인데 이상하게 같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지는 그런 사람인 거죠. 죽이 잘 맞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 전날에 보았던 고양이 때문이었어요. 길에서 만났던 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에 저는 그 다음날 그 친구를 찾아 간 거죠. 저는 그 고양이의 눈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알았습니다. 병상에 있는 그 친구에게 다 같이 병문안을 갔을 때, 그 친구가 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부장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다음날 급하게 연차를 써야 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부장님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건 아마도 제가 부장님 말을 듣고 있지 않아서였을 것 같아요. 고양이의 눈을 보느라고요.
병상의 친구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왜 저를 그런 눈으로 보았는지, 왜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처럼 저를 바라보았는지. 그래서 그 친구를 찾아갔지만, 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옆에 앉았어요. 그냥 앉아서 링거가 떨어지는걸, 그 방울방울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병상의 친구가 말을 했습니다.
"왜 왔어?"
왜 그렇게 그 말이 서운했던 걸까요. 사실 저도 우리가 용건 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을 만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그 친구에게 저 말을 듣자 너무 서운했습니다. 이 친구는 우리가 훨씬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래도 이 친구를 만날 때마다 살갑게 대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도 친구 사이인데 병문안 온 친구를 반가워하지는 못할망정 무슨 말이 저럴까요.
"아, 와줘서 고마워"
제 표정이 안 좋았나 봅니다. 이런 말을 뒤 붙이는 것을 보니까요. 그러면서 웃었어요. 조금 어색하게 말이죠. 저 역시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사실 저라도 충분히 말이 저렇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친구의 어색한 미소를 보면서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서로가 더 어색해졌습니다. 저는 다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습니다. 병상의 옆에 작은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서요. 뭔가 머릿속이 몽롱해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묘하게 습했던 날씨와 병원의 소독약 냄새, 그리고 환기가 잘 안 되어서 인지 무거운 공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냥 얘기를 들으러 왔어"
친구는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는 저를 천천히 뜯어보듯이 보았습니다. 제 쪽을, 그리고 눈을 천천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침대에 몸을 기댔습니다. 베개에 머리를 파묻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는 경쾌하게까지 들렸습니다. 그렇지만 또 그렇게 한참을 친구는 말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병상의 목소리들이 유독 크게 들렸습니다. 커튼을 쳐야 하려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머쓱한 기분이 들어서, 일어나야 하는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는 나를 보지 않은 채로 말했습니다. 30도 정도로 올라와 있는 병실 침대의 윗부분에 그대로 등을 기대고 있는 그는 창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너 얘기"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네 얘기"
친구는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이었어요. 전날 본 고양이의 눈이었습니다. 제 눈을 보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독백에 가까운 말투였지만, 친구는 계속 제 눈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마 시작은 그거였어. 교통사고였어. 뒤에서 누가 내 차를 들이 받았지. 마트에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아내와 둘이 타고 있었거든. 정우가 할머니랑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범퍼가 크게 망가졌고, 아내가 좀 다쳤어. 허리랑 목이 너무 아프다고 하더라고. 나는 뭐 큰 이상은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일도 쉴 수는 없는 상황이라 그냥 넘어갔지. 아내는 병원도 다니고 해야 하다 보니 사고 처리는 모두 떠넘겨버렸어. 차도 주로 아내가 썼으니까.
그 남자랑 아내가 만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1년 뒤야. 근데 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정우 생각을 많이 했어. 아직 엄마가 필요할 때라고 그렇게 수십 번은 생각했던 것 같아. 그냥 아내의 일탈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결혼을 하고 나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얘기인지는 잘 알잖아. 결혼이라는 제도는 세상 모든 걸 분업화하는 와중에 구시대적 기독교의 잔재라고 난 생각해. 그래서 오히려 아내에게 어쩌면 공감했던 것 같아. 물론 난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지만, 분명히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거든. 아마 기회가 있으면 나라고 그런 짓을 안 했을까는 싶고. 그냥 나에게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아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어. 그 남자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내가 미혼 행세를 했을 리는 없으니 말이야. 사실 처음에는 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난 그런 거 눈치가 없거든. 당시에는 정말 상상도 못 했어. 나중에 퍼즐을 맞춰보니 왜 그랬는지 아주 조금씩 퍼즐들이 끼워지는 거지.
막 화가 나지는 않았어. 그냥 안타까웠던 거지. 사실 나도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물론 정우가 있지만, 정우를 족쇄로 생각하는 건 너무하잖아. 그냥 이런 일이 없었으면. 그냥 더 잘 참았으면 싶었지만, 아내의 선택은 이런 거였던 거지.
정우가 왜 그때 나가자고 보챘던 걸까. 정우는 왜 그때 꼭 그네를 타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그 차를 알아봤던 걸까. 기억력도 나쁜 내가 1년도 전에 사고를 냈던 그 차를 대체 왜. 또 그 남자는 왜 그렇게 드문 차를 탔던 걸까. 그 새까만 색 차를.
나는 정리를 하라고 했어. 아니 사실 그날 이후 내가 정리를 하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아내는 이미 정리를 했던 것 같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어. 아내는 이미 이런 상태로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어.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했어.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시작은 진작에 있었던 것 같아.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할 수 없는 관계라니. 이건 같이 살 수 없는 관계잖아. 용서를 한다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니잖아.
나는 아내가 어디로 갔는지 찾지 않았어. 그건 옳은 결정이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그녀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언젠가 정우 앞에 그녀가 나타날지는 모르겠어. 지금 내가 이렇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정우를 돌봐주기를 바라지는 않아. 정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인생도 있는 법이니까.
억눌러 왔던 것들이 문제였을까. 이렇게 너한테 말하고 있는 나도 가식을 떨고 있는 걸까. 사랑이라고는 모르는 나의 죗값을 받는 걸까. 비가역성이 세상의 진리라는 말 들어봤어? 죗값 같은 건 없다는 뜻이야. 시간이라는 건 흐르지 않아. 이미 일어난 일은 앞으로의 일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아.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기준은 오직 고정되었느냐 아니냐 분이거든.
나의 암은 죗값이 아니야. 그냥 어떤 우연이, 어떤 확률이 나를 여기로 이끈 거지. 정우의 삶도 그저 우연일 뿐이야. 나도 아내도 정우가 이런 삶을 살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이것이 정우에게 또 어떤 우연을 이끌어 줄 거라고 생각해. 네가 지금 이렇게 내 옆에 왔잖아.
얘기는 들었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건 딱 네가 우리 정우 망한 나이일 때구나. 살아계셨는지도 몰랐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건 사고였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들었는지는 나도 몰라. 저번에 내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누가 얘기하던데. 너희들 병문안 왔을 때.
너를 보면 우리 정우가 걱정이 되지만, 그런데도 안심이 돼. 우리 정우도 너 같은 눈을 하고는 하거든. 그 뭔가를 꽤 뚫어 보는 눈. 그런데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눈. 사랑이 없는 눈. 그런데 너는 내 앞에 왔구나. 사랑이 없는 눈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는 눈치도 사람 보는 눈도 없구나.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친구의 눈에서 나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겨울은 원래 추운 거라고, 여름은 원래 더운 거라고 말했던 아버지. 어머니를 항상 그리워하셨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모르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연락처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알아내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컴퓨터에서 어머니의 연락처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어머니께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아냈을 때.
아버지께서는 술잔을 기울이셨다. 내가 잠자리에 누운 이후 소주를 마셨다. 나는 잠들지 않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행복을 빌고 계셨다. 아버지는 무슨 마음으로 소주잔을 털어 넘기셨을까. 내 친구는 정우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정우와 고양이 그리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살게 될까요. 이렇게 셋이 모이는 것은 어떨까요. 지구가 더워지고 있지만, 세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떠나도, 가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진짜로 가족을 모두 잃고서 가족이 생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