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삶의 희극

읽고보고맛보고 2022. 1. 24. 21:24

B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교외로 나와서 바라보는 강물은 반짝거렸다. 이 나이 든 몸으로 이렇게 움직이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종종 그와 함께 이렇게 교외로 나왔다. 카페는 이제 많이 낡았다. 내가 앉아있는 이 철제 의자는 20년도 넘었다.

A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것은 밤이었다. B의 전화를 받고 나는 한동안 A를 잊고 살았던 것을 떠올렸다. B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올 것이 온 거지.' 나도 B도 충격받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제 80대고, 한국 남자의 1/3은 이 나이대에 생을 마감한다. 우리 세 명 중에 A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A가 처음 이혼을 했다고 말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B와 나는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였다. 항상 B에게 어서 결혼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던 A였기에,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어떤 전조도 없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가 어째서 이혼을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진행된 그의 이혼은 그가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A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딴짓도 좀 해보고 살려고."

그때 B가 지었던 표정은 실로 가관이었다. 내 평생 누군가의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면 딱 그때뿐이다. B는 지반이 없는 삶을 살았다. 프로그래밍과 웹디자인, 일러스트, 글쓰기에 능통했던 B는 내가 아는 한 한 번도 뭔가를 진득하니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는 2년 이상 한 집에서 살아본 일이 없었고, 언제나 훌쩍 떠나서는 또 내킬 때 돌아오고는 했다. 그는 다양한 외주 일들을 통해 생활비를 벌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에세이를 기고하기도 했고, 대필 작가 일도 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항상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들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그 자신의 기준으로도 말이다. 나는 B의 삶의 태도를 그저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A는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B의 재능을 아까워했고, 그가 가진 유전자를 훨씬 더 가치 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B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받은 높은 수준의 교육들에 대하여 그가 너무 책임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했었다.

나는 A가 사실은 B를 동경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A가 갑자기 이혼을 하고, 사직서를 내고, 훌쩍 여행을 떠나버렸던 그 해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나와 똑같이 생각했을 것 같다. 다만 B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B는 A를 고작 자기 따위와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B는 A를 한 번도 말리지 않았다. 다만 처음 가는 도시에서 숙소를 구했던 자신의 몇몇 경험담들을 늘어놓았을 뿐이었다.

A는 종종 편지를 보냈다. 그는 항상 나와 B에게 따로따로 편지를 보냈다. 나에게 보낸 편지는 주로 나와 B의 얘기였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는 그의 편지는 나에 대하여 그가 기억하는 에피소드들이 적혀있었다. 우리가 술을 잔뜩 마시고 실수했던 이야기. B가 여행을 떠나서 유부녀와 눈이 맞았던 이야기, 내가 결혼을 하던 날의 이야기. B가 해외에서 가져왔던 와인 이야기, 그는 한 번도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적지 않았다. 다만 편지의 우표 소인은 정말로 다양했다. 가까이는 인천부터 남해, 목포를 비롯해서는 후쿠오카, 싱가포르, 홍콩, 심천, 룩셈부르크,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편지는 없어졌다. B는 A가 이제는 뭔가 잡은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뭔가 통하는 게 있으려니 하고 말았다. 나는 이미 자라나는 아이와 직장 사이에서 A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 맘 때쯤이었던 것 같다. B가 펜션을 시작했던 때가. B도 이제는 나이가 있었고, 그가 가진 프로그래밍 기술이나 일러스트들은 더 이상 수요가 없었다. B는 자신이 돌아다녔던 전 세계의 숙소들의 경험을 살려 외진 곳에 펜션을 지었다. 정말로 외진 곳이었지만 B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그 맘 때 A가 B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 A는 이렇게 말했었다고 했다. "이제는 사는 법을 고민하지 않게 됐어."

그리고 우리는 강릉의 병원에서 A의 시신을 마주했다. A의 부모님과 전 부인에게 연락은 하지 않았다. B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A의 모든 것에 대하여는 B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심한 뒤였기에 나는 B의 말대로 했다. B는 A의 시신을 장례 없이 화장했다. 모든 뼛가루는 그가 가져갔다. 나는 그가 지금 이 카페 앞에 그 뼛가루를 뿌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마도 그가 종종 나와 함께 이곳에 오는 이유일 것이다.

B는 마침내는 입을 때었다.

"나는 A를 따라잡고 싶었어. 그래서 철저하게 그가 살지 않을 방식으로 살았지. A는 항상 내가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그건 그저 나에 대한 배려일 뿐이야. A는 항상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있었어. 그 녀석은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거야. 나처럼 떠돌지 않고도 알 수 있었던 거지. 그래서 아마 사는 법을 고민하지 않게 되었던 거겠지. 이제 우리도 늙었어. 옛날 생각만으로도 하루가 다 지나갈 만큼 말이야. 하지만 A라면 그렇지 않겠지."

나는 그저 웃었다.

"내가 죽거든 여기다 뿌려줘. 그건 우리 애들이나 와이프 말고 네가 해라. 너 혼자 와서."

B도 웃었다.

"난 여기 싫다. 너는 나랑 같이 가자. 내 펜션 근처 어디가 좋겠다. 대신 내 펜션은 나 죽거든 네 애들 주고 말이야. 괜찮지 않아?"

우리는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사람은 이렇게도 사는 법이라는 게. 그렇게 우스웠다. 가까이서 보는 인생도 희극이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