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꿈과 살인

읽고보고맛보고 2022. 1. 24. 21:18

둔탁한 촉감. 그렇게 금속 배트를 타고 진동이 전해져 왔다. 금속을 두들길 때의 그 강한 충격은 아니지만, 석고상처럼 무르지는 않았다. 그것은 뭔가를 으깨는 느낌. 단단하지만 너무 단단하지는 않은 어떤 것을 으깨는 느낌이었다.

 

이 꿈은 처음이 아니었다. 언제나 시작은 이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것부터다. 그리고 앞으로 고꾸라진 사람을 수차례 내리친다. 머리가 짓이겨지고, 더 이상은 사람의 머리 모습이라 보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평소에 꾸던 자각몽과 동일했다. 그는 현실의 스트레스가 이런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칫 위험한 망상이지만, 꿈인데 무엇이 어떠랴. 오히려 이런 꿈이 현실의 자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리라. 심지어 그는 자신의 파괴본능에 휩싸여 현실이라 생각하고 이 배트를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깨어날 꿈임을 알고 있는대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이유도, 심지어 상대가 누군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꿈은 언제나 그 뒤통수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아는 것은 이 희생자는 제법 키가 큰 남자라는 것뿐이다. 파란 점퍼와 청바지 차림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남자였다.

 

금속 배트를 빗겨 치고 말았다. 머리는 흉하게 짓이겨져서 조금 이상한 형태로 꺾여 버렸다. 땅을 내리친 그는 팔의 고통 때문에 금속 배트를 놓쳤다.

 

그는 깜짝 놀랐다. 그가 매일 꾸던 그 꿈에서 그는 한 번도 잘못 내리친 적도, 팔에 통증을 느낀 적도 없다. 이 고통은 무엇일까. 이내 혼란이 찾아왔다. 단지 꿈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꿈에서는 통증을 느낄 수 없다더니, 아무래도 그 말은 거짓인가 보다, 그는 생각했다.

 

그는 그가 꿈에서 깨는 순간을 기억하는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 꿈이 끝났었는지를, 다만 오늘만큼은 그 순간을 기억해 보고자 주변에 몰두했다. 뭔가 자신 주위의 이 어두운 골목이 붕괴하면서 암전 되지 않을까, 특별한 광경을 상상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흥건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르는 와중에도 꿈이 끝나지가 않았다. 그는 실로 위험한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는 한참 전부터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었다. 단지 생각을 어떻게든 피해 갔을 뿐이다.

 

이건 정말로 꿈인가? 오늘이? 아니면 그동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