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에 대하여
C는 30대 초반이었고, 우리 중 가장 어렸다. 그가 왜 우리랑 어울리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와 어울렸고,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우리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어디서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와 있어도 어색하지 않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은 아주 놀라운 특징으로, 그는 우리와 있을 때는 마치 우리 또래의 유부남처럼 보였고, 20대의 동생들과 있을 때는 그도 20대로 보였다. 그는 어떤 역할도 소화해낼 수 있는 훌륭한 배우 같았다. 그는 그 덕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는 많은 여자를 만났다. 그중에는 대학생도, 유부녀도 있었다. 그는 그녀들 각각에게 그녀들이 원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에게는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녀들이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적어도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주고 싶어 했다. 그는 일종의 애정결핍이었다. 누구나 사랑과 관심에 굼 주리곤 하지만, 그는 그것에 유독 더 예민했다. 그리고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정말 놀랍게 알아챘다. 그는 자신을 향한 작은 악의도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게 알아채고 반응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를 만나도 외로워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도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는 때로는 스스로를 혹사시켜가면서 사람을 만났고, 그것은 분명히 약간의 광기에 가까웠다. 그는 사랑받기 위하여 노력할수록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많은 여자들이 그를 떠났다. 그녀들은 그가 자신이 원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만났지만, 그런 모습이어서 떠났다.
그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는 그 속에서 점점 더 그녀들에게 맞춰갔다. 더더 그녀들이 원하는 남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밖에 사랑받는 방법을 몰랐다. 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더 많은 여자들이 그를 떠났다. 그 악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 속에서 점점 더 스스로를 잃어갔다.
그는 내게 더 이상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바로 그라고 나는 조언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사랑만을 원했다. 진심으로 사랑받기만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사랑받을 주체를 잃어버렸다.
기독교 정신이 세상을 물들이기 전까지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기독교를 이용하는 백인들의 부르주아지 문화가 자본주의와 함께 우리 사회에 진입하기 전까지 자살이 이렇게나 죄악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역사에 대하여 무척이나 빈약한 지식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유학, 적어도 성리학에서는 충과 의는 목숨보다 항상 우선되었다고 알고 있다
C의 장례식은 시신 없이 치러졌다. 장례식장은 시끌벅적했다. C의 부모님과 여동생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사인은 실족사라고 했다.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의심까지 해 가면서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몇몇 여자들도 있었다. 지인들 속에 섞여서 왔지만, 나는 C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진 속의 얼굴임을 기억해냈다. 그녀들은 C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이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죄인의 얼굴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영정은 밝게 웃고 있었다. 이 인상 좋은 청년은 더 이상 우리 모임에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 A는 시신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C가 스스로 수장을 택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살아있기에 너무 괴로워했고, 우리는 그를 위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죽음은 우리의 운명이었고, 우리는 곧 자발적으로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다만 C가 먼저였을 뿐이다. A는 죽음은 언제나 순서의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누가 먼저 죽느냐일 뿐이다.
나는 정말로 그 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점점 더 사리지고 또 살이 지다가 결국 육체까지 사라졌다. 바다는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어디보다 깊고, 어디보다 어두운 곳.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죽음이 있을 것이다. 인생의 다른 모든 것처럼 누군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닐 것이다. 그녀들의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결국은 최후의 용기를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그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C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대충 열두시 경이였던 것 같다. C가 내 좁은 방을 찾아왔다. 그는 술 한잔하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밤새도록 아주 긴 이야기를 말이다. 그가 죽은 지 보름이 된 날이었다. C는 죽기 전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아주 달랐다.
그는 그가 죽은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시간도 공간도 그가 살아있을 당시와는 매우 다르다고 했다. 죽은 이후의 일들은 아주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오른쪽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려면 위로 간다고 했다. 뛰어내리면 솟아오르고, 가만히 서있으면 어딘가로 이동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올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죽기 전에 비로소 자신이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좀 더 정확히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도 타인을 사람으로 정면에서 바라본 적이 없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모든 행동은 그 사람의 감정을 제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죽어가는 B를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인간인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그는 그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정말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자 했었다. 훨씬 더 애정 어린 관심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겠다고, 달라지겠다는 결심으로 말이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애정결핍은 지독히도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 같다. 그는 사랑에 목말라했고, 그에 대한 관심 어린 시선들에 굶주렸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엄청난 양의 물을 마셨다. 매일 1.5L 패트를 50병 이상 마셨다고 했다. 물을 토해내고, 화장실을 끝도 없이 갔지만,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용기 있는 청년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애정 없이 살 수 없음을 알았고, 다시 그의 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서서히 소멸되어 버렸던 그는 '그의 방식' 마저 이미 잃어버린 후였다.
그는 자신이 어떤 남자이길 원하는 사람이 없어진 그때가 되면 스스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런 성장 드라마는 없었다. 아무도 그가 어떤 사람이길 정의해 주지 않자, 그는 무엇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이나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