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 대하여
오늘도 우리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오늘도 절망에 빠져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있었지만, 말하는 그 조차도 그것이 얼마나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도 위로 따위는 하지 않았다.
A는 첫아이가 죽은 이후로, 완전히 망가진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도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놀라웠다. 다만 그는 집에서 부인과 대화를 나눈지 벌써 1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죽은 것은 2년 전이다. 당시 9살이던 아이는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투신이었다. A와 그 와이프는 아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꼈기에, 결코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아이와 부부를 많이 봐왔고, 자살 같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밝은 아이였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부부는 도저히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목격자는 아이가 분명히 자신의 의지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는 다른 목격자 역시 아이는 혼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아주 밝은 표정으로 꼭대기 층으로 놀러 간다고 말했다. 부부는 처음에 실족사, 사고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그 아파트에 갈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아이가 뛰어내린 3동에는 그 아이의 친구도 없었고, 부부의 지인도 없었다. 물론 집에서 그다지 먼 곳은 아니지만, 9살 아이에게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경찰은 타살의 가능성을 점쳤다. 목격자의 증언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실족사에서 목격자가 아이가 떠밀린 것인지 스스로 뛰어내린 것인지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이유였다. 부부 역시 타살을 의심했다. 그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범인을 찾았다. 하지만 동기도 목격자도 없었다. 아이를 기억하는 아파트의 경비원은 아이가 분명히 혼자서 들어왔다고 말했다. 못 보던 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이들의 출입을 일일이 단속할 만큼 고급 아파트는 아니었다. 복도식 아파트에 적지 않은 주민이 살고 있는 아파트인 만큼 주민들 전체를 조사하기도 어려웠다. 아파트에 전과자나 신원이 불분명한 주민도 없었다. 부자동네는 아니지만, 젊은 부부에게 어울리는 아주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었다.
경찰은 지속되는 조사에서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자, 목격자의 증언을 받아들였다. 자살로 결론지은 것이다. 자살이라는 결론이 다가올 때부터 경찰은 부부의 아동학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자살의 동기를 찾고자 한 것이다. 학교에서의 괴롭힘 또는 집안에서의 학대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 여시 당시에 조사를 받았다. 물론 다소 형식적인 조사에 불과해 보였지만, 나는 열정적으로 부부를 변호했다. 나는 그들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학교에서도 자살의 동기를 찾지 못했다. 담임과 같은 반 아이들은 아이가 얼마나 밝은 아이였는지, 또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그를 좋아했는지 증언했다. 아이는 호기심이 매우 왕성하고 머리가 아주 좋았다고, 아마도 아버지를 닮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죽은 아이의 몸에 상처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자살의 동기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부부에 관하여 많은 소문들을 만들어냈다. 주로 학대에 관한 것이었다. A는 아주 유능한 변리사였다. 그는 큰 사무실에서 일했고, 경험도 실적도 풍부했다. 국내 최고의 일류 대학을 졸업했고, 수입도 생활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매우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문제가 될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나 역시 그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이런 일이 벌어지자, 그가 평소에 경비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학대와 개연성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가 옆집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눌 때마다 보여주었던 어색함이 그의 뒤틀린 성격으로 확대되었다.
A는 그래도 그가 사회생활에서 만나고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편이 되었다. 그들은 A를 변호했고, A는 가까스로 생활을 지켰다. 그에게는 일이 있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A의 아내였다. 그녀는 A와 결혼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A의 결혼 당시 그를 질투할 만큼 그녀는 좋은 여자였다. 다만 그녀는 결혼 이후에 여느 전업주부와 비슷하게 많은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생활에 불만을 품은 적이 없었고, 결혼 전에 일하던 직장 생활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손재주가 뛰어나고 요리 실력이 좋아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었다.
다만 아이의 죽음 이후로 그녀는 음침하고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문이 먼저였는지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변하는 게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람들은 그녀가 예전부터 사교성이 부족했다고 말했고, 틀림없이 아이를 학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식당에서 아이가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던 일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라 괴팍하고 소심한 어머니가 과도하게 아이를 괴롭힌 사건으로 탈바꿈했다.
부부의 생활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A는 그래도 꿋꿋하게 직장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A는 일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그동안 쌓아온 실적과 상사들의 평판은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위로를 던졌고, 언제나 그렇듯 일이나 잘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인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집은 엉망이 되어갔고, 부인은 누워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집안일은커녕 밥을 먹거나 씻는 활동도 하지 않았다. A는 차마 그녀를 일으킬 수가 없었다. A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고, 그가 가진 슬픔 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워서 위로의 말을 찾아낼 노력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모여서 술을 마셨다. 어설픈 위로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A는 남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우리 앞에서는 보여줬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를 정말로 괴롭히는 것은 아직도 그는 아이가 어째서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경찰 수사가 종결된 이후에도 홀로 조사를 계속했다. 어째서 아이가 죽었는지를 찾아 헤맸다. 그 과정에서 모든 가능성을 원점에 두고 다시 조사를 했지만, 그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는 스스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똑똑해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죽음이 너무나도 궁금했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적 죽음이 너무 궁금했던 나는 10살 즈음, 대충 그만한 나이에 목을 맨 적이 있다. 나는 죽음의 근처에 갔지만, 어린 나이의 내가 묶은 허술한 매듭이 풀리는 바람에 죽음에 이르지는 못했다. 나는 A의 아이도 같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행히도 그 아이는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나는 그 아이가 나와 비슷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없어 보였다. 생존에 대한 욕구나, 생명에 대한 경외감, 또는 부모님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런 것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것이 내재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히 나는 뭔가가 결여되어 있었고, 살아남아야 하는 생명체 종으로서 무척 불리한 돌연변이다. 나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아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사인을 듣지 않고도 자살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나는 아직 A에게 이 얘기를 전한적은 없다. 다만 언젠가 나는 이 얘기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무슨 대답을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보고 크게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 얘기를 꼭 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