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눈 오는 밤

읽고보고맛보고 2022. 1. 24. 21:11

눈이 오면 다음 날 길거리부터 걱정하는 것은 '꼭 그렇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습니다. 이제 어른이라고, 난 더 이상 눈 오는 날을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은 거죠. 누군가 말했을 거예요. 난 이제 눈 오는 게 싫다고, 눈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냐고, 다음날 질척 질척한 바닥을 생각해 보라고 말이죠. 그리고 아마도 그 말을 듣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고, 어른스럽고, 낭만적 환상에서 졸업한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겪을 불편함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히 아니니까요.

하지만 눈 내리는 풍경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측면을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어린 시절만큼 눈이 환상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끊임없는 반복은 세상 어떤 일에서도 신비함을 앗아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눈 내리는 풍경이 전보다 덜 좋아졌냐하면 그건 전혀 아니에요. 반짝반짝하는 하얀 눈송이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그 눈이 세상을 덮어버리면 일시적이라도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하고, 그 순간이 예전에 느꼈던 것보다도 더 소중해졌습니다. 그런 한순간 한순간의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아가고 있으니까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사람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측면을 즐기고 눈밭에서 즐기듯이 그 사람과 함께 즐기는 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잔혹해서 보고 싶지 않았던 더럽고 지저분한 현실들을 함께하게 되고, 그 속에서 더 이상 함께함을 즐기지 않게 되죠. 때로는 반짝반짝하는 순간조차, 이제 나는 그런 낭만 따위는 쫓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고는 합니다. 이제 더 좋은 것, 더 반짝반짝한 것, 더러움을 아직 보지 못한 어떤 것을 쫓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익숙한 광경을 들여다보듯이 익숙한 사람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 순간의 위로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반복될지 모르는 반짝반짝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한순간 한순간의 위로가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내일의 불편함에 조금은 더 관대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