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NETFLIX

"저 상황에 저렇게 행동하는 게 말이 되나?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저런 일이 벌어졌는데 뭔가 조사도 대응도 너무 미지근한 거 아니야? 뭔가 영상도 좀 불편하고, 뭔가 인물들 설정도 빈틈이 많아 보이고... CG도 최신작이라는 느낌은 아닌데..." 하면서 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6시간이 지났습니다.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11월 19일에 넷플릭스에 신작 지옥이 공개되었습니다. 오징어 게임 덕분에 한국 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이때에 오징어 게임의 뒤를 잊는 한국산 넷플릭스 독점 콘텐츠라는 점에서 기대를 많이 받았죠. 일종의 초자연적 현상, 재해 같은 것이라고 봐야겠죠. 그런 현상을 그린 SF 작품이라고 분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괴수가 나타나거나, 빙하기가 오거나, 쓰나미가 몰려오거나, 화산이 폭발하거나, 또는 우주에서 소행성이 떨어지는 등 이런 미지의 위협에 대한 작품들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재해가 아주 특이합니다. 앞에 열거한 위협들보다 오히려 희생자는 적은 것 같습니다.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때 희생자가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현상이 너무 기괴하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인에게 이는 훨씬 더 공포스럽습니다.
이야기는 이 재해 상황에서 우리 사회를 그렸습니다. 보통은 재해와 인간의 대결구도를 그린 반면에 이 작품에 그런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재해와 맞서 싸우고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죠. 다만 이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용해 먹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죠. 독특한 접근이고, 아주 신선한 소재였습니다. 무작위로 임의의 사람이 죽게 된다거나 하는 소재의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은 그 과정을 더 그로테스크하게 연출하고 사람들의 유추나 해석, 연구를 배제함으로써 그 현상 자체에 대한 해석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이 시즌1이 프롤로그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고, 시즌2부터는 재해와 인간의 대결 구도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시즌1에서는 분명히 이 절망적 재해에대한 극복의 실마리조차 보여주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독특한 소재와 접근이라면, 더 창의적인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은 오히려 진행이 산만해지고 원할한 이야기 전개를 해칠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신흥 종교와 광신도의 이야기에 집중하여도, 이 새로운 세상에서 행동하는 더 다양한 방식들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재해 상황에서 사람과 사회의 변화와 반응을 상상하는 것이 이 작품의 큰 골자인데, 그 상상력이 조금 더 나아갔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는 합니다. 물론 유아인, 김현주, 양익준, 박정민, 류경수 배우들의 연기가 거슬릴 정도는 결코 아닙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극중에서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앞의 이야기 전개의 어색함과 조금 맞물린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현주 씨의 액션신은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전체적으로 액션신들이 조금 어색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첫머리에 적었듯이 어느틈엔가 6시간이 지나가버리는 몰입도를 가진 작품입니다. 이 예측 불가능한 소재의 힘, 그리고 상상력의 부족과는 별개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은 대단합니다. 시즌1의 6화 안에 프롤로그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완결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느껴집니다. 사실 마지막 6화의 눈이 오는 아파트 단지에서의 '시연' 장면은 시즌1을 통틀어 가장 명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절망감과 무력감도 있고, 아드레날린과 분노도 있고, 그 와중에 어떤 사이다스러운 해소, 그리고 희망까지 있는 장면이었기에 그 장면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