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읽고보고맛보고 2021. 10. 18. 20:16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최신작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통하여 한국에 유명해진 그는 철학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얼마나 내재적으로 많은 철학적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지 깨우쳐 주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를 다시 깨닫게 해 주었죠. 그리고 후속작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같은 작품에서 자본주의적 논리가 우리 철학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그가 계속해서 말해왔던 자본주의적 시각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더 적극적으로 '능력주의'에 대하여 반론을 표합니다. 가히 충격적인 제안을 그는 이 책에서 했고, 미국 사회에 대하여 쓴 이 책의 현실은 우리에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책의 시작을 함께하는 추천의 글부터 신기한 느낌을 받습니다. 서울특별시 교육감, 서울대 교수, 국회의원의 추천사는 분명 이 책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얼마나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지 말합니다. 하지만, 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의 추천사인 만큼 정치철학을 표방한 책에 찬, 반을 표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분명히 이 책의 주장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에 대하여 독자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는 그 말은, 이 책의 말은 본인에게 신선하긴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동시에 표방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추천사덕에 이 책에서 샌델 교수가 강력한 자기주장을 펼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생각의 실마리를 준다는 표현처럼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위주로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샌델 교수의 강력한 주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왜 추천사의 글들이 이 책의 주장과 거리를 두려고 했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은 최근 미국에서 붉어진 입시 비리로 시작합니다. 학부모들이 입시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성적을 조작한 사건이죠. 사실 우리에게도 이는 그렇게 생소한 사건이 아닙니다. 내신 문제와 정답을 빼돌린 쌍둥이 사건

같은 것들은 우리 역시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죠. 이 작품에서 샌델 교수는 대학이 인재 선별기가 되어있는 현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입니다. 우리 역시 그것이 큰 문제임을 알고 있죠. 하지만 샌델 교수는 그것이 공정하지 못한 인재 선별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능력이 높은 순서로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죠.

책은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힐러리 후보가 얘기했던 "저는 낙관적이고, 다양하고,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장들에서 이겼답니다.", "그래도 나는 미국의 부자와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얻었다"라고 자랑했던 내용에 대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승리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트럼프의 승리는 포퓰리즘의 반격이라고 말이죠. 물론 이것은 미국의 이야기입니다. 세계화의 과실에서 낙오된 사람들에 대하여 사회가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그리고 그들의 분노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취급한 미국의 진보 지식인들에 대하여 말합니다.

샌델 교수는 소위 아메리칸 드림과 청교도적 전통으로 분류되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한다는 사상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음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성과는 행운과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노력과 분투로 얻어낸 성과라고 보는 것이죠. 그로 인하여 우리가 얻은 재화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하지만 샌델 교수는 이 모든 것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미국의 사회 지표를 확인하면, 유럽보다 훨씬 이동성이 덜하고 빈부 격차도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샌델 교수는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미국과 유럽의 시민들에게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가능성에 대하여 답한 결과도 알려줍니다. 실제와 정반대로 미국인들은 자국의 사회적 상승 가능성을 과대평가했고, 유럽인들이 과소평가하고 있음을요. 이런 현실에서도 "하면 된다"를 외치는 민주당 정치가들은 과연 옳은 것이냐고 묻죠.

샌델 교수의 논의는 학력주의로 넘어갑니다. 무기가 된 대학 간판에 대하여 말하죠. 교육받은 엘리트가 교육받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올바른 정책 결정을 할 것이라는 것은 무지에서 오는 편견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를 해결하는 방법은 교육이라는 생각 역시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최고의 대학을 나온 사람이 최고의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닐 수 있다'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반론과는 다릅니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의 관료가 되는 것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고학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저학력자에 대한 편견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그것이 심지어 저학력자들에게도 내재화되어 있다는 것을 다룹니다.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면서 남용하기 시작한 '스마트'라는 단어와 '인센티브제'에 대하여도 다룹니다. 그 최고의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은 정치적 설득을 포기하고, 그들의 욕심을 제어하여 사회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이와 같은 태도들은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팩트와 정보의 공통적인 베이스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인식까지 나타나죠.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예시로 오바마 행정부의 '우리 모두가 어떤 기본 사실에 동의하고, 각자의 의견과 신념을 가지고 건설적인 토론을 하면 된다'는 생각에 대하여 '기술관료적 오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시로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기후변화에서 환경오염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하는 이들은 과학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이런 현상에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과학적 질문이 아니라 권력, 도덕, 권위, 신뢰의 문제임을 저들이 과학적 진실을 몰라서라고 말하는 엘리트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챕터 5 성공의 윤리에 와서는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말합니다. 기술관료와 귀족은 이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또 우리가 가진 능력은 순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며,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가졌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불평등에 대하여 '기회의 불평등'을 말하지만, 사실 완벽한 능력주의, 모든 불공정한 장애물이 제거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에 대하여 샌델 교수는 반대합니다. 그리고 맨큐가 제시한 "각 개인의 소득은 그가 이 사회에 내놓은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도 반대합니다. 경쟁적 자유시장이 주는 소득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적 생각은 논리적 결함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시장이 능력을 보상한다는 관념이 과거부터 비판받아왔음을 지적합니다. 사실 이는 그가 제시하는 카지노 재벌과 의사, 간호사의 예시를 보면 명백하죠. 교사와 마약상의 예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돈을 잘 버는 일은 그 사람의 능력과도 무관하고 그가 한 기여의 가치와도 무관하다.'라고 말합니다.

챕터 6에서 샌델 교수는 대학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인재 선별기'가 되어버린 대학의 역할을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는 것이죠. 우리는 대학 입시의 문제점이 '공정하지 못한 경쟁'에 있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샌델은 대학이 '인재 선별기'의 역할을 한다는 자체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현재의 SAT 점수는 이미 부모의 재산을 따라가고 있고, 대학은 오히려 엄격한 선별작업을 통하여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죠. 거기서 오는 엄청난 경쟁은 학생들에게도 큰 부작용들만 만들어내고 있음을 설명하죠. 그는 아주 혁신적인 인재 선별기 부숴버리기를 제안합니다. 그는 예일대의 입학사정관이 남긴 말을 인용합니다. "때때로 수천 명의 지원자들을 모두 합격시켜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나는 그들의 지원서를 계단 아래로 집어던져 버리고, 아무나 골라 1,000명을 뽑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훌륭한 학생들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샌델 교수는 이와 같은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합니다. 그는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의 지원서를 모아 두고, 20대 1이 넘는 경쟁률에서 무작위로 사람을 뽑자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도 대학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고, 대학의 '인재 선별기'는 효과적으로 부숴버릴 수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챕터 7에서는 이 모든 그의 주장들을 정리하고, 일의 존엄성에 대하여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함을 말합니다. 능력주의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린 현실에 있어서, 우리가 공동선을 회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나는 제안한다. 급여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없애는 대신 금융거래세를 일종의 '죄악세'로 신설하고 카지노나 다름없는 실물경제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투기 행위를 억제하는 방안을 토론의 주제로 삼을 것을. 당연히 다른 입장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넓게 보아 일의 존엄을 회복하려는 것이고, 그러려면 우리 경제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덕적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기술관료적 정치가 숨겨 왔던 질문들 말이다.'

 

부족한 요약이지만, 샌델의 주장을 빠르게 요약하면 위와 같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이것은 우리에게도 큰 경종을 울립니다. 이제 우리는 존경을 받고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돈을 버는 이들이 존경을 받고 존중을 받을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시장에 정의가 있다고 믿는 것이죠. 우리의 분노는 이제 공동선을 해치는 이들에게 향하지 않습니다. 공정한 시장을 해치는 이들에게 향하죠. 공동선을 크게 훼손하는 권력자에게 분노하는 대신, 나보다 '능력이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받는 기회에 분노합니다. 이제는 '내 차례'가 왔는데 어째서 저 녀석들을 챙겨주냐고 말하는 것이죠.

저는 이 책의 주장들을 우리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샌델은 학력주의로 인한 극성 부모의 탄생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이 현상이 심각한 사회로 미국과 한국을 꼽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와 같은 혐오적 포퓰리즘과 좌절과 박탈이 만연한 사회에 와있습니다. 샌델이 우려하는 미국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을지 몰라도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합니다.

저는 입시를 완전히 부숴버리는 샌델의 주장이 우리에게도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자격이 되는 이들을 모아서 무작위 추첨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해야만 특정 대학 출신으로서의 심리적 실제적 우월 지위도, 또 절대적 자격을 얻었음에도 '변별력'때문에 만들어지는 쓸데없는 스펙 (심지어는 어린 시절부터 스토리를 설계하는 행위까지) 그리고 입시 지옥에서 학생들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와 같은 형태로 입시가 변해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대학 입시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판별하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많이 벌어져 버렸으니까요.

경제문제에 대한 샌델의 제안에 대하여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완벽한 자본주의가 작동할 만큼 인간은 이성적인 욕망의 존재가 아니고, 공산주의가 작동할 만큼 선한 존재도 아닙니다. 물론 현재는 경제적 능력이 인간의 본질을 정의해버릴 만큼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고, 샌델이 말했듯이 우리가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코 시장에게 이것을 맞겨버려서는 안됩니다. 공정한 시장이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왜 역자는 'THE TYRANNY OF MERIT'을 '공정하다는 착각'이라고 번역하였을까요. 그리고 소제목으로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는 문구를 채택하였을까요. 마이클 샌델 교수는 우리가 공정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게 아니고, 능력주의가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기회의 평등'이 공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요. 오히려 이 제목은 '기회가 평등하는 착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의 주제와는 많이 다르죠. '능력주의 횡포'는 우리에게 '평등한 기회'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우월하다고 여기게 하니까요. 긴 리뷰가 되었습니다만, 이 리뷰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책입니다. 만약 얼마 남지 않은 올해에 한 권의 책만을 추천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