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김혜진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어머니입니다. 30대 중반의 딸이 있는 어머니.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인물의 생각과 말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이미 그 설정만으로 감히 비난할 수 없는, 그런 인물입니다. 때문에 이 인물은 면죄부를 가진 양 어떤 의견이라도 개진할 수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 화자가 작가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끊임없이 어머니와 딸을 대비시키면서 양쪽에 다 공감하기도, 또 양쪽에 다 반대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이 작품에 제시된 세대 간의 갈등은 사실 새로운 주제는 아닙니다. 티브이 드라마가 이것을 좀 더 가벼운 모습으로, 부유층이 보여주는 고부간의 갈등으로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좀 더 위태로운 위치의 어머니와 딸이 비극적인 갈등들로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답답함도 딸의 무책임한 대담함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소설적 과장이 심한 인물들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딸'이 온전히 그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이 어딨어'라고 느껴지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작가가 끝까지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이러한 세대 간의 갈등은 종종 꽉 막힌 부모 세대의 문제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자녀 세대의 문제는 그저 대화와 소통, 그리고 부모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공감능력의 부족 정도로 그려집니다. 이것은 결국 자녀 세대가 옳다는 전재를 깔고 있기에 성립하는 구도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딸이라는 인물은 많은 불행을 겪게 되고 또 앞으로도 마주하게 되겠지만, 이것은 그녀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틀린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려는 영웅적인 행위의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일반적인 구도보다는 좀 더 부모 세대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자식의 행복을 본인이 규정하려 드는 신파적인 태도는 독자를 답답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정말로 당연한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너무 당연한 그것은 분명히 최근에 수입된 것이니까요.
이 작품은 딸이 보여주는 '옳은 일을 옳다고 말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태도에도 비판적으로 보입니다. 덮어놓고 싸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야 할까요. 자신이 옳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딸은 결과적으로 어머니에게 고통만 안겨주고,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어머니는 결국 딸과 딸의 연인에게 살 곳을 내어주죠.
설득력 있는 화해를 보여주는 것은 판타지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날에는 어머니와 딸이, 세대와 세대가, 사회와 개인이 화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항상 불가능해왔던 것만은 아니니까요.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