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읽고보고맛보고 2021. 8. 15. 21:37

고갱의 작품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큰 이유가 있어서 본 전시회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가했던 어떤 날에 찾은 미술관에서 고갱의 작품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법 오랜 시간을 고갱의 그림 앞에 있었습니다. 저는 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안목이 없기에 그의 그림이 어떠했는지는 적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저 다른 전시회들보다 오랜 시간을 그림을 지켜보았던 것. 그리고 그 그림이 아직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것만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하여 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름대로 생각해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감각은 유전자에 새겨진 '승리의 직관'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가까이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상이 유전자의 승리에 유리하였다면, 사람은 그 대상을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진화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생명체이고, 서로 상보적인 관계라면 이는 피드백을 통하여 계속해서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진화를 이와 같이 단방향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는 가능한 진화 형태라고 생각됩니다.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에 대하여는 이러한 거시적 관점이 유효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관한 우리의 관념에 많은 의심을 품지 않기 때문입니다. '취향'과 '감수성'의 문제에 이성을 끌고 들어오는 것은 무모한 시도로 생각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대상을 접했을 때 우리의 1차적인 '감정'에 의존하며 그것은 뇌에 새겨진 본능적인 것이 있습니다.

물론 아름다움은 사회적으로 학습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방을 통하여 '밈'을 학습하며, 그것은 유전자와 동일한 형태로 활동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의식보다 무의식이 훨씬 큰 영역을 차지하기에 아름다움이 유전적인지, 학습적인지는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종종 기존의 밈을 부수고 새로운 밈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밈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죠. 저는 그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에 새겨진 승리의 직관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투철한 고민의 결과물로 새로운 밈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진 큰 의미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 소설, 건축, 과학 등에 비하여 회화는 투철한 고민보다 승리의 직관에 더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타 분야라고 기존의 밈에 대한 파괴나 저항 없이 새로운 밈이 탄생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만, 아마도 정도와 빈도의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화가 자체의 드라마틱 한 인생사나 새로운 그림이 직면하는 세간의 비난들, 기존 밈의 저항들을 보면 그것은 기존 밈과의 연결선 상에서 해석하기보다는 새로운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이러한 승리의 직관을 표현할 줄 아는 천재였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는 우리는 기존의 밈과 동떨어진 그의 그림에서 어떤 감동을 얻은 것이겠죠. 기존의 밈을 부수어 버리면 승리의 직관이 가진 순수함, 그리고 원시적인 어떤 것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그의 인생은 그러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 정도가 과격한 사람이었죠. 그는 기존의 밈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부인과 아이들을 팽개치고,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도덕성도 버렸습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 연민도 모두 파괴하였고, 오직 그의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결국은 타히티의 숲 속에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죽게 됩니다.

예술은 종종 기존의 것을 파괴하면서 등장하며, 이러한 등장들이 우리가 가진 어떤 밈들을 파괴하면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밝혀내고는 합니다. 그것이 훌륭한 예술을 통하여 얻는 커다란 쾌감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스스로를 승리의 직관을 가진 이들과 모든 밈을 동원하여 싸우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이러한 위대한 직관 앞에서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