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읽고보고맛보고 2021. 7. 26. 21:29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입니다. 일본계 영국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노벨상 수상 경력이 있는 우리 시대의 거장 중 한 명이죠. 그의 소설은 굉장히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전작인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보여주었던 SF적인 설정과 이 작품은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미래의 SF가 아닌, 과거의 SF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판타지적인 느낌까지 던져줍니다.

 

SF 소설들이 그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개됨을 고려하면, 이 작품을 SF 소설로 분류하는 것은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작가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낼 화자로서 AI보다 좋은 인물을 찾지 못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주 명석하고,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순수하고 충실한 아이 같은 존재로 말이죠.

 

SF 적인 눈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면, 이 사회에 대하여 설득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나를 보내지마'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하죠. AI 로봇이 아이들의 AF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유대감 조성을 위한 존재로 판매되고, 아이들은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향상'을 받을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기술을 가진 사회가 이 책에 묘사된 모습일 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작가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SF적 배경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진입합니다. 작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것이죠.

 

클라라는 아주 모순적인 존재처럼 보입니다. 아주 과학적이고 극도로 이성적인 동시에 미신적이고 종교적입니다. 태양을 바라보는 클라라의 관점은 매우 종교적이지만, 작가는 그것이 이 극도로 이성적으로 학습하는 AI가 옳다고 결론내린 일이라고 독자들을 설득합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소설의 이야기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양이 머무르는 헛간에서 소원을 비는 클라라의 모습에 '이게 무슨 짓이지'라고 느끼게 되는 거죠.

 

하지만 클라라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클라라는 이 헛간을 찾아갈때도, 또 매연을 내뿜는 기계를 파괴할 때도 그 이유를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클라라는 마치 그림자를 통하여 세상을 학습함으로써, 독자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에 다가서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그것이 유물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과 대치됨을 알고 그것을 타인에게 이해시키려들 생각이 없어 보이죠.

 

이러한 클라라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딸의 대체품을 만들려고 했던 어머니와 카팔디씨와 관점과 대치됩니다. 그들은 물질을 통하여 본질을 모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죠. 작가는 이 두 관점의 차이를 작품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하지만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다른 형태로 사태의 종결을 선언하죠.

 

어쩌면 조금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런 형태로 흘러갑니다. 아이는 자라서 어릴적 함께했던 애착 인형을 내려놓고,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인연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집니다. 오직 클라라만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죠. 이 마지막은 '토이 스토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네요.

 

당신이 SF의 팬이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과학적 상상력과 그런 종류의 지적 자극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 그런걸 얻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세계관과 인간의 모습을 조금 비틀어서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에 혹하는 분이라면 이 작품은 많은 생각을 남겨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