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영화로도 출시되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책, '남아 있는 나날'입니다. 우선은 작가에 대하여 조금 얘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태생의 작가입니다.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죠. (가끔 주변에서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어 추가로 말씀드리면 노벨 문학상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 아닙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5살에 영국으로 이주하여, 영국에서 성장한 작가입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모두 영어로 쓰여있어 일본 작가보다는 영국 작가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고, 그로 인하여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도 있기 때문에 아예 일본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맨부커상 수상 작품, 남아 있는 나날은 20세기 중반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스티븐스가 노년에 여행을 떠나면서 작품은 시작되죠. 하지만 사실 이야기는 주인공 스티븐스의 6일간의 여행 기록보다는 그가 스스로 돌아보는 인생 기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독백을 통하여 그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고, 거기서 우리는 주인공의 감춰진 진심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는 평생을 '위대한 집사'를 목표로 살아왔습니다. 그것을 최우선 목표로 그 외의 많은 것들은 묻어두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하여 위대한 주인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인은 '톱니바퀴의 중심'에 어울리는 위대한 인물이 아님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주인이 정말로 악의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저 이용만 당했을 뿐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스티븐스가 달링턴경을 옹호하면서도, 그가 스스로 자신이 달링턴 경의 집사였음을 밝희기를 꺼리고 있음을 보면 그가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보는 그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시대와 우리 시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기를 장려 받으며, '위대한 사랑'을 미덕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에게는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도피는 경력의 단절이었고, 대의를 저버린 행위였습니다. 그가 전통에 묶인 고리타분한 존재여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죠.
스티븐스는 과거의 사랑을 후회하게 될까요. 부친이 임종을 맞이한 그날을, 켄턴양이 청혼을 받아들인 그 날을 후회하게 되었을까요.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에 그는 아직 '저녁'이 남아있음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미국인 주인을 위한 농담을 익히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작품의 원제인 'The Remains of the Day'은 앞으로 남은 날인지, 지금까지 남긴 날인지 불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어쩌면 둘 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혼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쓰라면 아마 이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그의 섬세한 문체만으로도 읽을 의미가 있는 작품 '남아 있는 나날'입니다.